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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보리 Jul 18. 2023

무지개똥

<개.나.다.> #1 개가 나타났다


시작은 사소했다(?). 동네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느 텃밭 주변을 냄새 맡으며 어슬렁거리던 강아지 한 마리를 발견해 인근에서 같이 시간을 보내다, 유기견을 발견하면 신고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청과 보호소에 신고를 해 내가 살던 지자체 보호소로 인계해 버렸던 것이다.



날 마주쳤을 때, 강아지는 처음에는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내 옆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꼬리를 흔들고 발라당 누워 배를 만져달라고 하기도 했다. 가까이서 보니 목줄 자국은 있었지만 목줄은 없었고, 털은 북슬북슬했지만 깔끔한 편이었으며 먹지 못해 상당히 말라 있었다. 근처에 사는 개인가 싶어 주변 가게에 물어봤지만 개를 안다는 사람은 없었고, 길가에 30분 정도 앉아 주인이 지나가나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없었다. 내가 길가에 앉아있는 동안 강아지는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었고, 8월 말의 더운 날씨에 조금 헥헥거리기도 했다.



그때 강아지를 그대로 그 자리에 두고 집으로 돌아올 순 없었던 걸까? 막연히 '개가 주인도 없이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않나' 싶었다. 돌아다니다가 차에 치일 수도 있고, 개를 학대하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나는 강아지에게 뭔가를 해 줘야 할 것만 같았고, 뭘 해 줘야 되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사실 지금도 정답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마이크로칩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러 간 동물병원에서, 유기견 발견 신고를 해야 하는 것이 먼저라는 조언을 들었고, 시청과 보호소에 전화를 걸었다.



‘유기견을 발견하면 신고해야 한다’라는 걸 틀렸다고 하긴 어렵다. 주인이 있는 강아지일 수도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을 거치지 않고 내가 덜컥 데려다 키우거나 이웃 사람에게 주어 버리는 것은 자칫하면 범죄가 될 수 있다. 가능하면 원 주인이 찾아갈 수 있도록, 지자체 보호소에서 보호하면서 공고를 올리고 시간을 주는 것이 먼저이다. 열흘 간의 공고 기간이 끝나도 원 주인이 찾아가지 않는 한 동물의 관리권은 여전히 보호소에 있고, 보호소에서 데리고 있으면서 새로운 입양자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니까 열흘이 지났다고 처음 발견해 인계한 자에게 강아지가 자동으로 돌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최초 인계자가 강아지를 다시 데리고 오려면 입양 신청서를 써야 한다. 그러면 그 강아지는 공식적으로 내가 입양한 강아지가 되고, 내 이름으로 인식 칩을 삽입해야 할 의무도 생긴다. 이러한 것들은 몽글이를 시 보호소로 보낸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들이었다. 보호소 소장님은 친절하지만 단호했다.






보호소와 연락이 닿기를 기다렸던 3시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가 왠지 뻘쭘해 몽글이를 쓰다듬고,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칩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대충 만든 줄을 목에 걸어 여기저기를 걸어 다녀보기도 했다. 몽글이는 피하거나 저항하는 것 없이 내가 가자는 대로 무심한 듯 따라다니다가, 저녁 무렵 보호소 소장님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서 자신을 데려가려고 할 때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다리에 힘을 주면서 차에 타지 않으려고 버티는 모습이었다.


그 3시간의 기억이 열흘 내내 날 괴롭혔다. 나는 공설 보호소로 간 강아지들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전엔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으니까. 뒤늦게 궁금증과 걱정이 몰려왔다. 보호소로 간 강아지들이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해져 책과 뉴스 기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내가 도대체 걔한테 무슨 짓을 했던 거지. 내가 도대체 무슨 똥을 싼 거지. 하면서.



열심히 알아본 결과 얻게 된 결론은, 내가 싼 똥이 생각보다 상당히 컸다는 것이었다. 지자체 보호소는 유기견을 원래 주인이나 새로운 입양자가 데려갈 때까지 말 그대로 '데리고'있는 곳에 불과할 뿐, 이들의 건강이나 안전을 보장해 줄 만한 관리를 해 주는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곳으로 간 강아지들이 원 주인의 품으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입양자가 짠 하고 나타나 남은 견생을 호강하며 행복하게 보내다 하늘나라로 가는 결말은 매우 매우 드문 케이스였다.



시골 보호소에 들어간 시골개 몽글이의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보호소 내에서 관리를 제대로 받지 못해 죽어가거나, 질병을 얻거나 보호소에 남은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락사(?)를 당하거나, 개고기를 만들거나 먹는 사람들에게 입양되어(공설 보호소에서 개를 입양하는 데에는 특별한 심사 절차를 요하지 않고 돈도 들지 않는다) 복날의 식재료로 쓰이거나 등등 다양하고도 잔혹한 운명이 몽글이에게 펼쳐져 있었다.*



간혹 지방의 보호소들 중에도 운영자와 봉사자들의 진심 어린 손길이 모여 관리도 잘 되고 강아지들의 재입양율도 높은 보호소들이 있는 듯하였지만, 몽글이가 들어갔던 보호소가 그런 곳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제대로 똥을 쌌음을 자각하고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이제 와서 남은 선택지는, 위에서도 썼듯 몽글이의 입양 신청서를 쓰고 데려오는 것뿐이었다. 열흘간의 공고기간 동안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몽글이의 주인을 찾는 글도 올려보고 전단지를 만들어 붙여보기도 했지만 결국 몽글이의 원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몽글이를 보호소로 보낸 지 12일이 되던 날,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소장님께 연락을 드렸다.



개를 키워본 적이 없었던지라 벼락치기 공부도 했다. 당시 내가 했던 공부들이란 개의 ‘문제 행동’을 방지하는 것들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즐겨보던 EBS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개들처럼, 아무것도 모르고 덜컥 데려온 강아지가 마구 짖기 시작하면 어떡하지. 집안을 파괴해 놓으면 어떡하지. 사람을 물면 어떡하지. 우리 집 고양이를 물면 어떡하지. 하는 온갖 어떡하지가 머릿속을 지배했고, 나는 내가 싼 똥을 더 크고 냄새나는 똥으로 만드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산책 방법, 건강 관리방법, 분리불안을 방지하는 법, 개가 사람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법 등에 대한 공부를 했다.



소장님은 열흘 전 몽글이를 데려갔을 때처럼 트럭 옆좌석에 몽글이를 태워서 내가 살던 집 근처로 오셨다. 몽글이는 차에 묶어 둔 목줄을 미처 풀지도 않았는데 다급하게 뛰어내리느라 목이 졸릴 뻔하고, 차에서 내리고 나서는 바닥을 뒹굴고 냄새를 맡으며 좀처럼 진정하질 못했다. 몸에서는 대소변 비린내가 심하게 나고 있었다.



그렇게 몽글이는 내 개가 되었다.






몽글이를 데려오기 전 책과 유튜브를 보며 공부했던 ‘개 키우는 기술’ 들은 대부분 큰 쓸모는 없었다. 몽글이는 규칙적으로 밥을 주고 산책을 시켜주면 충분한 아이였다. 하루 두 번의 산책 루틴에 잘 적응했고, 깔끔하게 100% 실외배변을 유지했다. 차도 편안하게 잘 타서 몽글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드라이브를 가보기도 하고, 대구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다 오기도 했다.


몽글이는 사람이나 우리 집 고양이를 향해 짖거나 무는 행동도 없었고, 무던하고 조용한 태도로 집에 머물렀으며, 내가 출근하느라 집을 오래 비울 때에도 불안해하지 않고 집에서 날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엄청난 적응력이다. 우리가 만나고 가족이 되는 데에 어떤 특별한 협상과정(?)이랄 게 없었음에도, 몽글이는 내가 자신의 보호자가 된 그 순간부터 그 사실을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듯 했다.



처음 키워보는 강아지였지만 생각보다는 쉽게 느껴졌고, 즐거웠고 조금 행복하기까지 했다.
그럼 내 똥이, 결국 생각보단 어마어마하지 않았던 걸까? 애석하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몽글이를 입양할 때 각오하고 대비했던 크고 냄새나는 똥은 아니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준비도 하지 못했던, 처음 보는 무지개 칼라파워똥이었달까.



몽글이는 입양해 온지 정확히 한 달째 되던 날, 세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

"“90% 위탁보호소”에서 ‘무마취 고통사’ 남발하는 이유", <한겨레> (2021. 1. 19.)

"유기견을 개고기로? 집 잃은 개 팔아넘긴 시 보호소",  <한겨레> (2020.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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