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보리 Aug 09. 2023

새해 복

<개.나.다.> #7 면회

집에 오니 다시 조용해진 공간이 실감이 났다. 이젠 필요 없게 된 남은 배변패드들과 아이들 물건들을 주섬주섬 정리하다가, 옆에 다가온 몽글이를 박박 쓰다듬어 주었다. 안도감과 죄책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으로, 갑자기 넓어진 듯한 집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작은 기척만 내도 쪼르르 달려오던 강아지들이 이젠 없었다. 



몽글이는 아이들을 쉼터에 맡기기 직전까지도 수유를 했었다. 새끼들이 이빨이 나기 시작하면 다가오는 새끼들을 거부하여 젖을 떼는 강아지들도 있댔는데. 몽글이는 그런 적이 없었었다. 이미 송곳니까지 뾰족하게 올라온 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젖을 물어도 으르렁 한번 없이 고단한 표정으로 누워서 젖을 물려줄 뿐이었다. 그렇게 계속하던 수유를 하루아침에 끊게 된 결과, 아이들이 쉼터로 간 날 저녁부터 젖이 딱딱해지고 열이 나며 누르면 사출이 일어나는 등의 증상이 생겼다. 다행히 더 심해지지는 않고 하루 정도 지나니 자연스럽게 젖이 줄어들며 회복이 되었다. 



몽글이는 아이들이 없어졌다는 것에 당황하거나 아이들을 찾는 눈치는 아니었다.  육아가 끝난 뒤 좀 더 편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동안 나도 몽글이와 우리 집 고양이들을 챙길 여유가 부족했었는데, 오랜만에 몽글이를 유심히 관찰해 볼 수 있었다. 몸 이곳저곳에 고단한 육아의 흔적이 있었다. 마른 몸도 그대로였고 눈 밑 착색도 심하고 털도 듬성듬성했다. 지금의 풍성한 모량과 비교해 보면 이때는 산후 탈모가 심했던 모양이다.



아이들을 보낸 지 닷새 후, 한 해가 저물었고 새해를 맞이했다. 해가 바뀌었지만 나는 여느 신년과는 달리 힘이 하나도 나지 않고 연료가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애들이 아직까지 하나도 입양을 못 갔으니까 해결된 건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는데, 이제 특별히 뭔가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캐나다로 프로필을 보내 놨으니 그전까지 시기마다 필요한 준비를 하는 것 이외엔, 입양 가족이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다. 



너덜너덜해졌던 멘탈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추슬렀다. 오랜만에 몽글이를 데리고 인근 호수공원에 가서 천천히 걸어보고, 설 명절을 맞아 강아지 한복을 사입히고 본가에도 다시 다녀오는 등 되찾은 여유를 조금씩 누려보았다. 

이웃집으로부터의 짖음 민원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쉼터로 간 아이들을 챙기는 일은 계속되었다. 쉼터에서는 아이들을 맡아주실 뿐, 입양을 보내는 데 필요한 것들을 하는 건 여전히 나의 일이었으니까. 1~2주에 한 번씩 쉼터에 가 입양 단체에 보낼 사진을 찍거나, 병원에 데려가서 접종을 맞혔다. 2호기는 다소 이르지만 고환이 충분히 내려와 있어, 4개월령이 되었을 때 중성화 수술도 받을 수 있었다. (의도치 않은 교배를 방지하기 위함도 있고, 중성화 수술이 된 것이 입양 가족을 찾는 데에도 유리하다.)



만나러 갈 때마다 쑥쑥 자라 있었고, 건강하고 활발했으며, 오랜만에 만나는 내게 점프를 하고 얼굴을 핥으며 신나게 반겨주곤 했다. 이젠 돌봐주지도 않고 가끔 면회나 가는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좋아해 줄까. 고맙고 벅찼다.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에 다녀오는 길은 고속도로를 타야 했다. 매번 들르게 되는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작은 반려견 운동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침 한겨울이라 갈 때마다 강아지가 거의 없어서, 목줄을 채운 채 뛰어놀게 했다. 간식을 쥔 사람을 따라 이쪽으로 가면 이쪽으로 우르르, 저쪽으로 가면 저쪽으로 우르르하고 잘 몰려다녔다. 멈추어 서면 동시에 앉아서 꼬리를 흔들며 아이컨택을 했고, 간식을 주면 싸우지 않고 잘 받아먹었다.



쉼터에 가지 않는 평일에는 쉼터에서 해 주는 라이브 방송을 가끔 보았다. 실내 견사에서 지내는 소형견들이 하루 중 일정 시간 넓은 운동장에 나와 운동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그 아이들 틈에 뒤섞여 냄새를 맡으며 뛰어다니고, 소장님과 실장님을 졸졸 따라다니며 간식을 달라고 하거나 안아달라고 보챘다. 다른 강아지들과 싸우거나 하는 것 없이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캐나다 프로필에 '강아지와도 잘 지낸다'라고 적었었던가.



이제 어엿한 강아지가 된 아이들은 1호기를 제외하곤 몽글이보다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긴 편이었다. 흔히 '발바리'라고 하는 강아지들의 체형이다. 셋 모두 귀는 바짝 섰고, 진돗개처럼 길쭉하지만 주둥이 끝은 약간 뭉툭한 얼굴형을 가졌다. 털은 1,2호기는 짧고 3호기의 털이 나머지 두 아이보다 조금 길어, 외형상 몽글이와 가장 비슷했다.







예전에 몽글이를 보호소로 보내놓고 당근마켓과 포인핸드에 '강아지가 보호소에 있으니 견주분은 꼭 찾아가시라'며 써놨던 게시글들을, 가끔씩 다시 들어가서 확인해보곤 했다. 혹시 누군가 몽글이를 찾고 있거나, 몽글이를 안다는 사람이 댓글이라도 하나 남겨 놨을까 싶어서였다. 이제 몽글이는 내 강아지가 되었기 때문에 누군가 나타난다고 바뀔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늘 궁금했다. 



이제는 몽글이가 왜 길에 있게 되었는지보다도, 내가 알지 못하는 몽글이의 어린 시절이 알고 싶었다. 새끼들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다 보니 몽글이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가 더욱 궁금해졌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미 젖은 먹고 자랐는지, 아기 때는 얼마나 귀여웠는지, 부모 형제는 어떤 애들이었는지, 원래 이렇게 착하고 겁 많은 성격이었는지, 그런 것들 말이다.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내 반려동물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다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겠구나 싶었다.



우리 아이들 데려가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생후 1일째부터 사진이랑 영상 푸짐하게 보내드릴 수 있는데. 그러나 아이들이 모두 입양 간 현재까지도 외장하드에 잔뜩 있는 아이들 사진과 영상은 오직 나만 갖고 있다. 입양자 분들께 전달해 주고 싶어도 그럴 방법이 없는 게 조금 아쉽다. 되게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말이다.



아이들은 2개월에서 3개월가량 쉼터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1호기 2호기는 쉼터로 간 지 2개월 후 캐나다로 출국했고, 3호기가 그로부터 20일쯤 뒤 출국했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전 06화 즐거운 나의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