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을 올리고 난 몇 주 후부터, 아이들의 입양 문의가 들어오고 있고, 심사를 해서 홈체크(단체에서 입양 신청자의 집에 방문해 개를 키우기 적합한 환경인지 확인하는 것) 예정이라는 등 반가운 소식들이 간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1호기 2호기의 입양 확정 소식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가장 먼저 입양이 확정된 건 역시 가장 귀여운 외모로 인기가 많았던 2호기였다. 며칠 후 1호기도 입양이 확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뛸 듯이 기뻤고, 조금 믿기지 않았다.
입양이 확정되었다고 바로 비행기를 태워 보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동 봉사자를 구해야 했다.
이동 봉사란 본인이 타고 이동하는 비행기 편에 수하물 중 일부로 강아지를 추가하여, 함께 태워서 출국하는 봉사활동을 말한다. 강아지는 몸무게에 따라 작은 캔넬에 넣어 기내 수하물로 이동할 수도 있고, 큰 캔넬에 넣어 위탁수하물로 이동할 수도 있다. 비용은 항공사에 따라, 혹은 어느 국가로 가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 비용을 이동봉사자가 부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구조 및 입양 단체에 보내지는 후원금이 이러한 수하물 비용에 사용되기도 한다.
이동봉사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 강아지를 출국시킬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화물위탁운송 같은 개념(카고라고 부른다)으로 인솔자 없이 강아지만 태워 보내는 방법이 있으나, 이 방법은 한 마리를 보내는데 수백만 원의 돈이 들기 때문에 가급적 이동봉사자를 구해서 보내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입양 가정을 구하고 선별하는 것은 해외의 입양 단체에서 진행하더라도, 이동봉사자를 구해서 출국시키는 것은 출국할 표를 구하는 일이기 때문에 입양을 보내는 쪽(국내)에서 전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강아지의 출국일은 이동봉사자의 출국 일정에 맞추어서 정해지고, 강아지가 탄 비행기의 도착시간에 맞추어 해외의 입양단체와 입양자가 공항에 마중을 나와서 강아지를 데려가면 입양절차가 얼추 완료된다.
때로는 해외 입양처를 찾는 것보다 이동봉사자를 구하는 것이 더 까다롭다고 했다. 입양이 확정되었음에도 이동봉사자가 구해지지 않아 몇 달간 강아지를 기다리는 해외의 입양 가정도 많다고 했다. K씨도 이동봉사자를 구하기 위한 홍보에 늘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SNS와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유튜브를 통해 홍보하기도 했다.
운 좋게도, 1호기와 2호기는 무려 ‘같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강아지의 숫자는 항공사 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이번에 이동봉사를 신청해 주신 분은 총 3마리를 이동시키는 것이 가능했고, 그 3개 자리 중 2개 자리를 우리 1호기와 2호기가 맡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미리 1호기와 2호기를 넣을 캔넬과 목줄과 물통 등을 준비하고, 검역에 필요한 서류(예방접종 및 건강확인서라고 하는, 동물병원에서 받는 서류이다)를 받아두고, 출국 당일 아이들을 공항에 데리고 가서 검역을 받게 한 다음 수하물비용을 결제하고 이동봉사자분과 함께 출국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할 일이었다. 출국 업무가 처음이라 서툴 나를 도와주기 위해 다른 봉사자 한 분이 오시기로 하였다.
출국날, 아침 일찍 출발해 아이들을 픽업하러 쉼터에 갔다. 정든 아이들을 보내는 소장님의 얼굴에도 서운함이 역력했다. 두 아이들은 차 트렁크에 놓인 캔넬에 들어가면서 신이 나 마구 날뛰고 짖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종종 면회도 했었고, 병원 일로 아이들을 쉼터에서 잠시 데리고 나왔다가 들여보낸 적도 있었지만, 오늘 나를 만난 아이들의 반응은 평소와는 또 달랐다. 이제야 원 보호자(나)와 다시 재회하여 바야흐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인 줄 알았는지, 평소보다 훨씬 더 기뻐하는 듯해 보였다. 우린 집에 가는 게 아니고, 오늘이 지나면 다시는 못 보는 건데. 기뻐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약간은 슬펐다.
아이들을 태우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내 실수 하나로 모든 절차가 무산될 수 있기에, 운전하는 것도 평소와 달리 매우 긴장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주차하고 나니 약속 장소에서 봉사자분을 만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남아 있었다. 남은 시간에는 아이들을 충분히 산책시키면서 대소변을 미리 볼 수 있게 해야 했다. 강아지가 긴 비행시간 중 캔넬에서 대소변을 지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하고, 온몸에 대소변을 묻힌 채 입양 가족을 만나는 것이 서로에게 썩 유쾌한 경험은 못 될 수도 있으니, 가급적이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미리 대소변을 본 다음 비행기를 타면 좋다. 멀미로 구토를 할 수도 있으므로 사료나 간식도 주지 않는 것이 좋고, 물은 마실 수 있게 보통 캔넬에 물통을 매달아서 보낸다.
주차장 근처의 잔디밭에서 1호기와 2호기를 번갈아가며 산책시켰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을 한 마리씩 줄을 매고 산책다운 산책을 시켜본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잔디밭을 걸어 다니며 산책을 했다. 다행히도 1호기 2호기 둘 다 검역을 받기 전 대소변까지 말끔히 해결했다.
1호기를 차에 두고 2호기를 데리고 산책을 시킨 후 차에 돌아오니, 1호기는 혼자 차 안에서 열심히 하울링을 하고 있었다. 우리 애들은 흔히 하울링을 하는 견종은 아닐 텐데. 쉼터에서 같이 지냈던 말라뮤트와 허스키 아이들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건가 싶어 귀엽기도, 짠하기도 했다.
약속 시간이 되어 출국을 도와주시는 봉사자분을 먼저 만났고,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공항 내 검역소로 향했다. 검역소 앞에도 대기 줄이 조금 있었다. 대부분 해외입양을 가는 강아지들이었다.
검역소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이들의 산책줄을 맨 상태로 켄넬 밖으로 잠시 꺼내놓았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해맑게 꼬리를 흔들며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지나치다 멈춰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들을 한참 쓰다듬고 가기도 했다. 4개월간 밝게 자라준 것 같아 왠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검역절차에서는 동물병원에서 미리 떼온 서류와 마이크로칩 삽입여부 등을 확인하고, 검역증명서를 발행한다. 검역을 마친 후 이동봉사자분을 만났다. 이십 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이었다. 출국하는 길에 부모님이 그녀를 배웅하러 같이 나오신 듯 보였는데, 그들은 연신 걱정되고 탐탁지 않다는 표정으로 "(딸이)강아지 이동봉사를 하겠다는 것을 수 차례 말렸는데, 결국 고집을 꺾지 않고 이동봉사를 하겠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이동봉사라고 하면 힘들고 위험할까 봐 걱정되실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직접 해보거나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동봉사'라고 하면 내 짐에 강아지 짐을 추가해서 가득 싣고, 커다랗고 무서운 개들을 질질 끌거나 들쳐 업어 비행기에 태우고, 그 과정에서 물리거나 강아지 배설물을 손에 묻힐 수도 있고...그런 이미지가 상상될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사실 강아지들은 이동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캔넬에 갇혀 있으므로, 이동봉사는 원한다면 강아지를 전혀 '만지지 않고도' 할 수가 있고(위탁수하물로 대형견 이동봉사만 하면 되니까), 바리바리 챙겨갈 강아지 짐이 있지도 않다.
1호기는 다른 강아지 하나와 함께 위탁수하물로 보내지고, 2호기는 메쉬로 된 얇은 이동장에 넣어 기내 수하물로 탑승할 예정이었다. 기내 수하물로 가는 강아지는 이동장무게 포함 7kg을 넘어서는 안된다. 출국심사를 받으러 갔는데, 미리 최대한 가벼워 보이는 얇은 이동장을 준비하긴 했지만 그동안 2호기가 얼마나 빠르게 성장했을지 알 수 없었기에 혹시나 7kg을 넘길까 봐 많이 긴장이 되었다. 2호기를 이동장에 넣은 채로 무게를 달아보니 6.9kg가 찍혔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치고 드디어 탑승시각이 다가왔다. 1호기가 들어 있는 캔넬은 다른 강아지의 캔넬과 함께 그물로 꽁꽁 싸매진 뒤 카트에 실렸다. 공항 직원이 카트를 밀고, 봉사자들이 잘 아는 '그 문'을 통해 천천히 멀어져 갔다. 잘 가라고 뭐 더 길게 이별인사를 할 것도 없었다. 여기에서 우는 봉사자들도 많다고 들었는데, 그때까지도 워낙 긴장을 하고 있어서인지 눈물도 안 나고 그냥 멍했다. 이동봉사자분이 2호기까지 데리고 게이트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애들이 진짜 갔다는 것이 조금 실감이 되었다. 서운함보다도 중간에 사고 없이 비행기 태우는 것까지 무사히 이루어진 것이 다행스러운 마음이 훨씬 컸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는 다른 강아지 한 마리 이외에도,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하는 다른 항공편에 출국하는 강아지가 있었고, 이들을 출국시키러 온 봉사자들끼리는 이미 서로 친분이 있는 듯했다. 나는 이들과 함께 움직이며 출국 업무를 하였는데 아무래도 나 혼자 초면이다 보니 수줍어서 말을 많이 섞지는 못했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엿들을(?) 수 있었다. 다들 오랜 기간 유기견 구조 및 임보, 입양 봉사를 해온 듯 보였고, 그 와중에도 다양한 고충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 활동들이 그분들에게 행복을 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중 한 분이 내게 ‘어쩌다 이 개판(?)에 들어오시게 되었냐’고 물어 왔다. 거기에 뭔가 또렷하게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얼떨결에 개를 입양하고, 새끼를 받고, 여기저기 신세를 져서 입양을 보낼 수 있었지만 나 스스로를 ‘개판에 뛰어들었다’라고 표현하기는 어려웠으니까. 문제의식이 좀 더 명확해졌고, 신세 진 것들을 돌려드려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앞으로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었다.
커피 한 잔씩을 하고 해산하여 집으로 내려오는 길에, 지금쯤 부지런히 밴쿠버로 날아가고 있을 아이들을 비로소 다시 떠올렸다. 내일 아침이면 도착해서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겠지. 새로운 가족과 함께 새로운 집으로 가는 기분은 어떨까. 아직 상황 파악을 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것이다. 적응 기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적응을 마치고 당당한 캐나다 강아지가 되고 나면, 그 후에도 가끔씩 내 생각을 해 줄까? 내 생각이 나는 게 그 아이들에게 좋은 걸까, 아니면 날 아예 잊어버리고 신나게 잘 사는 게 더 좋은 걸까…?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갑자기 왈칵 눈물이 나서 끅끅 울다가 결국 휴게소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걸으면서 마음을 정리하고, 간단히 끼니를 때운 뒤 다시 출발해 집에 도착하니,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다. 몽글이가 언제나처럼 펄쩍펄쩍 뛰며 날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