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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보리 Aug 22. 2023

다시 봄

<개.나.다.> #9 3호기의 출국

며칠 후, 1호기와 2호기의 입양 가족들이 캐나다 입양 단체에 보낸 편지가 내게도 전달되었다. 대략적인 입양 후기와 아이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등을 간단하게 작성한 것이었다.

1호기 2호기 둘 다 새로운 보호자가 지은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각자 새 가정에서 적응을 잘하고 있다고 했다. 1호기는 젊은 부부인 보호자의 5살 난 아들과 단짝친구가 되어가고 있다고 했고, 2호기의 보호자는 액티비티를 좋아하는 여자분이었고 2호기와 등산을 다니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2호기는 보호자가 키우고 있던 고양이와도 점점 친해지고 있다고 했다.


1호기의 편지에는 짧은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유아용 미끄럼틀이 놓여 있는 작은 마당을 1호기가 신나게 뛰어다니고 있는 영상이었다.



보호자들이 보낸 레터 중 1호기의 보호자가 쓴 이 대목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2호기)의 보호자와도 연락을 취하고 있어요. 이들의 남은 형제는 아직 한국에 있나요? 입양 가정을 찾았나요? 훗날 3남매가 같이 모여 놀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1호기와 2호기가 떠난 후, 쉼터 내 아이들이 같이 쓰던 방은 3호기 혼자 쓰게 되었다. 같이 놀고 먹고 자고 하던 형제들이 사라져 3호기가 많이 섭섭하고 외로울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주말이면 면회를 갔다. 처음에는 코로나 때문에 외부인 방문에 상당히 예민해했던 소장님이었지만, 이 무렵에는 혼자 남은 3호기가 안쓰럽긴 마찬가지이셨는지, 찾아오는 나를 전보다 더 반겨주셨고 아이와 함께 운동장에서 여유 있게 놀다 가는 것도 허용해 주셨다.



3호기는 차분하게 잘 지내고 있었다. 본래 호기심 많고 까다로운 성격답게, 내가 찾아가면 꼬리를 흔들고 발라당을 하며 반기면서도 (2호기처럼) 정신줄을 놓고 덤벼드는(?) 일은 없었고, 가만히 앉아 내 얼굴을 빤히 보며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설명 좀 해줘"하는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1,2호기보단 어른스러운 느낌이다. 엄마를 가장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하다. 


3호기는 몽글이처럼 이마가 넓고, 1호기처럼 검은색이고, 2호기처럼 다리가 짧고, 두 아이들보다 좀 더 길고 뻗치는 털을 가졌다. 머털도사 같은 신묘함이 느껴지는 외모이다.




운동장에 데리고 나가서 같이 뛰어다니고, 산책줄 매고 걷는 연습도 했다. 목줄이든 하네스든 가리지 않고 잘 매고 걸었고,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내 얼굴을 보면서 발을 맞추다가 멈추어 서서 간식을 받아먹을 줄도 아는 게 너무 기특했다. 그냥 이대로 해외입양 같은 것 다 취소하고 데리고 내려가서 같이 살아도 안될까, 잠시 생각했다.



이 기간 동안, 몽글이는 드디어 중성화 수술을 받았다. 출산을 하지 않았다면 일찍이 필요한 접종을 마치고 중성화 수술을 받았겠지만, 임신 중인 것을 알게 된 뒤로 모든 접종 일정을 수유가 끝날 때까지 중단했었고, 아이들을 쉼터로 보낸 뒤 남은 접종 일정을 마치고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동안은 산책을 나가거나 강아지들이 있는 장소에 몽글이를 데려갈 때마다 혹시 모를 불의의 사고(?)가 발생해 또 임신을 하는 사태가 일어날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는데, 이제 그 걱정에서 해방되니 후련했다. 엄마였던 시절의 몽글이는 대견했고 아가들은 귀여웠지만, 그걸 두 번 세 번 반복하는 것은 몽글이에게도 나에게도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일이었다.






3호기의 입양이 확정되고, 이동봉사자도 늦지 않게 구해져 출국 날짜가 정해졌다. 길었던 겨울이 가고, 3월 초가 되어 아직은 춥지만 조금씩 날씨가 풀리고 있던 때였다.

이번에도 나는 쉼터에서 아이를 데리고 공항으로 데려가, 검역과 출국을 시키면 되었다. 한번 해 봤던 일이라고 그래도 처음보단 긴장감이 덜했지만, 마지막 주자인 3호기도 그저 무사히 밴쿠버에 도착하기만을 바라는 심정으로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쉼터에서 3호기를 데리고 공항으로 출발하면서, 그동안 아이들을 잘 돌보아 주신 소장님께 꾸벅 인사를 드렸다. 이제 여기에 다시 올 일은 없을까? 그렇진 않을 거다. 신세를 졌으니, 일손이라도 도우러 자주 와야지.



공항에 도착해서 지난번처럼 산책부터 시켜 보았다. 이동봉사자분을 기다리며 2시간 가까이의 넉넉한 시간 동안 공항 내 잔디밭 이곳저곳을 돌아다녀 봤지만, 3호기는 끝까지 대변을 보지 않았다. 발걸음도 힘이 없고 꼬리도 내려가 있는 등, 알 수 없는 상황에 또다시 놓이게 된 스트레스가 커 보였다. 너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메쉬 이동장에 갇혀 이상한 걸 타고 오랫동안 어딘가로 날아가겠지만, 그곳에서 형제들과 새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지금 알려줄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검역을 마치고, 이동봉사자분을 만났다. 3호기의 이동봉사자는 젊은 부부였다. 지난번 2호기처럼 메쉬 이동장에 넣어 기내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3호기의 체중이 더 불었을까 걱정했지만, 7kg 제한도 무사히 통과했고, 수하물비용도 결제를 마쳤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3호기는 넓은 공항 로비에서 이곳저곳을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둘러보기만 했다.



3호기를 데리고 멀어져 가는 이동봉사자 부부를 배웅하고 돌아서니, 이제야 다 끝난 건가 싶었다. 마음이 무겁고도 가벼웠다. 솔직히 말하면 해방감 같은 것도 컸다. 최선을 다했고 내 손을 모두 떠나보냈으니, 이젠 진짜로 몽글이와 우리 고양이들과 행복하게만 지내면 되겠구나.

어둑한 저녁이 되어 공항에서 출발했고, 밤늦게 집에 도착해, 맥주를 마시고 잠에 들었다.






저녁 무렵 출발한 3호기의 비행기는 다음날 새벽에 밴쿠버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그렇다면 늦어도 우리는 다음날 아침 출근시간 전에는 입양 가족을 만난 3호기의 소식을 단톡방을 통해 전달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일찍 잠에서 깨 카톡방을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비행기가 무사히 도착했다는 소식 외에 3호기가 입양가족을 만난 사진은 한참을 기다려도 올라오질 않고 있었다.

알고 보니 이동봉사자 분들의 캐나다 입국심사 절차가 장시간 지연되는 바람에, 3호기도 게이트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함께 대기해야만 했던 것이었다. 캐나다 입양단체장이 공항에서 기다리며 역정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본래 예상했던 시각보다 6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입양가족인 중년 부부의 품에 안긴 3호기의 사진이 톡방에 올라왔다. 걱정과는 달리 비행기 안에서 응가를 지린 듯한 모습은 아니었다(물론 진짜 안 쌌는지는 알 수 없다). 곧이어 내가 챙겨 보낸 산책줄을 매고 3호기와 중년 부부가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진까지. 태어난 이후부터 이런저런 이벤트도 많았고, 성격도 다른 두 형제보다 조금 까다로워 늘 왠지 모를 아픈 손가락 같았는데, 이렇게 입양 가는 그날까지 마음 쓰이게 하는 게 역시 3호기 답다 싶었다.






며칠 뒤 3호기 입양가족들의 편지가 전해졌다. 3호기가 처음에는 시차적응 문제를 다소 겪었지만, 지금은 산책시간을 기다리는 귀염둥이가 되었다고 했고, 남자 보호자가 바닥에 엎드려 눈높이를 맞추고 3호기에게 손으로 사료를 주고 있는 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보호자에게 꼬리를 흔들고 있는 3호기의 사진 속에서,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만져보았던 3호기의 길고 복슬하고 뻣뻣한 털 촉감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했다. 앞으론 맘 쓰일 일 없이 매일매일이 마냥 즐겁고 신나기만 했으면,  3호기의 밴쿠버에서의 삶이 그 전의 어떤 생활보다도, 나와 함께 지냈던 시간보다도 비교할 수 없게 행복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늦은 여름 우연히 시작된 몽글이와의 인연이, 새 생명들과 함께 가을 겨울을 보내게 했고, 다시 맞이한 봄과 함께 모두의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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