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진 작가의 책 <창문 너머 어렴풋이>를 읽었다. 동네 친구가 자신의 책을 구입하면서 함께 읽고 싶다고 선물해 준 책이다. 신유진 작가의 책 <몽 카페>도 아직 다 읽지 못했다고 답했지만 읽고 싶었던 책을 선물 받아 기뻤다. 혼자 책 읽을 시간을 기다리며 읽었다. 책을 읽으며 오늘 밤도 쓸쓸하게 책을 펼치고 있을 엄마를 떠올렸고 창밖을 더 자주 바라보았다. 비가 폭포처럼 쏟아지는 날도, 하늘에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는 날도 집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좋아 핸드폰에 자주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건 순전히 창으로 바라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서다. 창문을 열면 바라볼 수 있는 산이 좋아 이사 온 지 5년이 넘도록 커튼도 달지 않았다. 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사소하게 아름다운 일인지 이곳에 살며 알았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봄꽃, 푸르른 여름의 초록 잎, 수채화 물감이 번지듯 물들어가는 가을의 단풍 그리고 나뭇잎이 모두 떨어진 가지에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의 풍경. 조금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창밖으로 바라보는 계절을 감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사랑하는 풍경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가능하다고 느낀다. 우리 집 앞산은 산기슭에 밭을 일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출입이 제한된 자연보호구역이기 때문이다. 저 숲속에 어떤 새들이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여름 아침 새소리에 자연스럽게 눈이 떠지고 우렁찬 매미소리를 듣는 여름이면 나도 힘을 내서 하루를 더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봄부터 여름밤까지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맑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여름이 깊어지면 풀벌레들이 밤새워 노래한다. 비가 내리면 폭포수 같은 천변의 물소리는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어둠이 낮게 깔린 밤이 찾아오면 멀리서 들려오는 부엉이 소리와 고라니의 울음소리는 내가 그들과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신유진 작가님의 글처럼 나도 산책을 하다가 무리를 이탈한 아기 고라니를 만난 적이 있는데 풀숲에 숨어 눈만 깜박이던 고라니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창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이 아름답지만 가끔 유리창에 부딪쳐 죽어있는 새를 볼 때면 이곳에 살고 있는 것이 한없이 미안해진다. 내가 누리는 이 모든 것이 원래는 그들의 집이었을 텐데. 뿌옇게 먼지 낀 창문을 청소하고 더 좋은 풍경을 보려고만 애썼을 뿐, 내가 살고 있는 콘크리트 벽과 유리창 때문에 죽어가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 척하려 애썼다. 그래도 매년 잊지 않고 창에 집을 짓는 거미를 반가워하게 되었고 또 바람이 차가워지면 내년에도 우리 집에 찾아와주길 바란다.
빽빽한 숲의 나무도 저마다 다른 초록의 색을 가지고 있고, 매미의 울음소리도 제각각 높낮이가 다르다. 매일 바라보는 하늘도 매 순간이 어찌나 다른지 지겨울 틈이 없다. 매일 같은 풍경을 바라보아도 이렇게 다르고 아름다운 순간처럼 쳇바퀴 도는 나의 일상도 매일이 다르게 느껴지길 바란다.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고 아이를 돌보는 삶에도 아직 내가 마음의 창으로 바라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