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던 글을 찾아서 읽어보니 이 글은 5년 전에 써놓았던 글이었다.)
해마다 명절즈음이면 명절증후군부터 시작해 해외여행객은 얼마나 빠져 나갈 예정이고, 시대에 맞지 않으니 차례를 없애자는 둥, 남자들도 손을 보태야한다는 둥 명절에만 나타나는 이런 이색 풍경을 다루는 기사가 오르내린다. 명절마다 사골 우려먹듯이 재탕으로 등장하는 뻔한 기사들 사이로 얼마 전부터 한가지 새로운 내용이 등장했다. 남편 가족과 얽혀 있는, 인간관계를 좌우하는 호칭 문제를 다루는 기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런 기사들을 접했을 때 나는 시댁으로 달려가는 대신에 컴퓨터 앞에 앉고 싶었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19년 2월 4일 설을 하루 앞둔 날이다. 명절을 쇠러 시댁으로 가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는 일이 현실이 되었다.). 기사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답답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남편과 얽힌 호칭들은 존칭을 쓰는데 아내와 얽힌 호칭은 존칭이 아니냐 이런 시각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인데,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글은 보이지 않았다.
호칭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닌데 명절에 이걸 문제로 삼는다는 건 명절에는 보기 싫어도 봐야하는 시댁 식구들과 부딪혀야 하니까 거기서 껄끄러운 호칭 문제를 끄집어내는 거 같다.
오빠랑 남동생이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내 현실에 평소에는 접해보지 못 했던 새로운 호칭이 등장하는 걸 경험하면서 우리나라 호칭체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어라, 내가 왜 아가씨야? 어라, 내가 왜 형님이야? 나에게 주어진 이런 호칭이 친해지지가 않았다. 뭐 이 정도야 하고 넘기기 어려웠다. 나를 아가씨, 형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내 brothers의 아내들은 어떤 기분일까? 자꾸 이 생각만 들었다. 딱히 brothers의 아내들을 걱정했다기보다 나도 결혼하면 저렇게 되겠구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아가씨, 형님이 되고 남동생들이 도련님, 오빠가 아주버님이 되면서 나는 하나씩 하나씩 본격적으로 호칭들의 정체를 벗겨내기 시작했고, 어느 지점에 이르자 회오리처럼 회의가 몰려왔다. 이런 언어 환경 안에서 사람들은 답답해하지도 않고 어떻게 이렇게들 잘 살아내고 있을까 아니 버텨내고 있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결정적으로 아내들(나는 올케라는 말이 싫다!) 둘과 내가 모인 자리에서 이상한 경험을 했던 게 계기가 되어 어디 얼마나 되는지 정리 좀 해보자는 차원에서 시작한 글이었는데 쓰다 보니 사람들 말마따나 책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의 아내와 내가 같은 자리에 있었는데 동생의 아내가 우리 둘이 있는 곳을 향해 “형님!”이라고 불렀다. 누가 대답을 해야할까? 오빠의 아내가 대답을 하긴 했지만, 남동생의 아내에게 우리는 둘다 형님이었다. 호칭에 대한 내 의문은 여기서 시작되었다.
생각날 때마다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정리를 해두긴 했지만, 이걸 책으로까지는 연결시켜 보지 못 했다. 명절즈음 호칭에 대한 기사가 올라올 때마다 누군가는 건드려주겠지 이런 기대가 있었는데, 기사도 그렇고 댓글도 그렇고 아무도 내가 생각하는 부분을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호칭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에는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떤 게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아무도 얘기가 없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나라도 화두를 던지자는 생각이 들었다. 얼추 글을 써두긴 했지만 책을 출판한다는 건 다른 문제였기에 귀찮음도 작용했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던지라 누군가는 건드려주겠지 기다리고만 있었는데 내가 졌다. 지난 세월 '나 아니어도 누군가는 이 문제를 끄집어내겠지.' 이렇게 흘려버린 세월이 10년이 훌쩍 넘었다. 명절이 되면 언론에서 호칭문제에 대해 살짝 운을 띄우는가 싶다가도 명절이 끝나면서 바로 수그러드는 명절 이벤트성 메뉴로 끝나는 게 아쉬워 오래전 끄적여 놓았던 글을 본격적으로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 가족이 다 모인 어느 날 어른들이 오빠 아들내미를 부를 때 "준기야!", "준기가 그랬어!", "준기 밥 먹으라고 해!" 이런 식으로 불러대다 보니 준기보다 한살 어린 남동생 아들내미 유빈이도 어른들처럼 "준기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어른들은 "너는 형아라고 그래야지." 하나같이 이렇게 지적해 주었다. 그래도 유빈이는 절대 '형'이라고 부르지 않고 '준기'라고 부르는 걸 고집했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그래, 잘 했어 유빈아! 그냥 계속 준기라고 그래. 어른들 말 듣지 말고 니가 이겨라.’ 이렇게 계속 응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신경도 안 쓰는데 어른들 잣대로 너는 형, 너는 동생 이렇게 줄 세워놓고 아이들끼리도 어른들 눈높이로 부르지 않는다고 지적질하는 게 너무 슬펐다. 이제 7살인 내 아이(2024년 현재 초5)는 지금도 ‘내 집’, ‘내 아빠’,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 ‘내 유치원’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른들의 언어에 물들지 않고 아이 스스로의 눈으로 보는 게 진짜일텐데 아이가 언제까지 이 표현을 고수할지 조마조마하기도 하다.
결혼 전, 오빠네 놀러갔다가 조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조카가 놀이터에 놀러온 다른 아이들이랑 잘 놀고 있길래 나는 그냥 한쪽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어떤 여자애가 오더니 "아줌마, 나는 일곱 살이고 얘(조카)는 여섯 살인데 얘가 나한테 까불어요." 이랬다. 결혼도 안 했는데 아줌마 소리를 들었다는 사실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순간, 정말이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고 세상이 멈추어버리는 기분이 들만큼 충격이었다. 집에 오는데 그 상황이 그저 어른들 세계 국화빵이라는 생각만 들었다. 아이들 세계에서도 나이가 권력이 되는 현실이 소름끼쳤다. 오래전 일인데 지금도 그 아이의 말투, 목소리가 기억난다. 그렇지 않아도 호칭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던 시절이었는데 이것도 하나의 계기가 되어 정리에 불을 당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