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식물인 서양민들레는 바람을 타고 가루받이를 하는 풍매화이지만, 자생종 민들레는 곤충의 힘을 빌려 수정을 하는 충매화다. 서양민들레는 도시 안에서 볼 수 있지만, 자생종 민들레는 시골에서 볼 수 있고, 최소한 도시를 벗어나 교외로 나가야 볼 수 있다. 자생 민들레를 보기 어려운 이유는 번식력 차이 때문이다. 자생 민들레는 봄에만, 그것도 남들 꽃피기 전에 후딱 먼저 꽃을 피운 다음 뿌리만 남겨놓고 여름에는 땅속에서 잠을 자지만, 외래종인 서양민들레는 남의 땅에 들어와서 적응하는 데 실패하고 남들이 살지 않는 땅을 골라 살아남은 다음 clone 형태로 복제하면서 개체수를 빠르게 늘려간다.
서양민들레는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우지만 다른 식물과 경쟁하면 살아남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식물은 살기 어려운 자연이 적은 도시 환경에 터전을 잡았다. 도시의 길가나 담벼락 밑이나 혹은 공터 같은 곳에서 서양민들레가 눈에 많이 뜨이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생 민들레가 서양민들레와의 경쟁에서 밀려 서양민들레한테 자리를 내주고 도시 밖으려 밀려난 게 아니다. 자생 민들레가 워낙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려서 봄이 되면 자생 민들레를 찾으러 도시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민들레의 이런 생태 환경을 몰랐을 때는 자생 민들레가 서양 민들레한테 경쟁에서 밀린 거라고 생각했었다. 바람의 힘을 빌려 자가 복제를 하는 서양민들레는 곤충의 도움으로 수정을 해야하는 자생 민들레에 비해 번식력이 끝내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디서나 눈에 뜨이는 거였다. 반면, 봄이 되면 하루 날을 잡아 도시를 벗어나 자생 민들레를 찾아나서곤 했는데, 자생 민들레가 눈에 뜨이면 '심봤다!' 이런 기분이 들 정도였다.
민들레의 영어 이름은 dandelion이다. 프랑스어로 '사자의 이빨'을 뜻하는 dent de lion에서 유래했다는데, 잎의 모양이 사자의 이빨 모양을 닮아서 그렇게 지었단다. '꽃'에 주목하지 않고 '잎'에 주목해서 이름을 지은 게 재미있다. 잎을 요리 재료로 쓰기 때문일까? 민들레는 명색이 식물인데 동물한테서 힌트를 얻어서 지어준 이름이 맘에 들까?
서양민들레와 자생 민들레를 구분하는 내 유일한 무기는 총포가 뒤로 젖혀져서 아래를 향하고 있냐 젖혀지지 않고 위를 향해 있냐 이거 하나뿐이어서 처음엔 일일이 총포를 확인해서 구분을 했는데, 시간이 좀 흐르다 보니 조금 거리가 있는 데서도 꽃 색깔만 보고도 판단이 섰다. 일단 꽃이 흰색이면 자생 민들레였고, 자생 민들레 중에도 노란색이 있는데 자생 민들레의 노란색은 서양민들레보다 연한 색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총포를 확인하느라 꽃만 눈에 들어왔는데 꽃구분에 도가 틀 즈음 잎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생 민들레의 잎은 서양민들레의 잎만큼 사자 이빨 모양이 뚜렷하지 않아 보였다.
뿌리에서 나오는 '타락사'라는 하얀 액체는 자동차 타이어 재료가 되는 천연고무와 성분이 같다. 언론 기사를 보니 특히 러시아 민들레는 다른 민들레 종에 비해 고무 성분 함량이 많지만 아직 타이어를 만들 수 있는 양에는 미치지 못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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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만 나고 자라는 식물을 자생종, 재래종, 토종, 특산종 이렇게 여러가지로 부른다. 각각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봤다.
재래종은 '전부터 있어 내려오는 품종'을 말한다.
토종은 '본디 그 지역에서 나거나 자라는 동물이나 식물 따위의 종자'를 말한다.
특산종은 '일정한 지역에서만 나는 품종.'을 말한다.
자생종은 '어느 지역에 본디부터 퍼져 살고 있는 생물의 종', '어떤 지역에 옛날부터 저절로 퍼져서 살고 있는 고유한 종(種)'을 말한다.
식물학계에서는 '토종'이라는 말보다 '자생'이라는 말을 사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토종 감자, 토종 옥수수라고 하면 감자나 옥수수의 원산지가 한국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란다. 감자나 옥수수는 원산지가 따로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민들레는 한국에서만 자라는 종도 있으니까 토종 민들레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서양민들레, 중국산 백목련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 토종 민들레, 토종 목련 이런 말에 거부감이 없었는데, 식물학 책에서 토종보다는 자생이라는 말을 선호한다고 하니 입에 착착 감기는 '토종'이라는 말을 놓아주어야 하는 게 섭섭하다.
사전을 찾아보면서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처음 글을 썼을 때는 서양 민들레, 토종 민들레, 자생 민들레 이렇게 다 띄어서 썼는데, 사전을 뒤적이다 보니 서양 민들레는 '서양민들레'로 붙여 쓰고 있었고, 토종 민들레는 '토종 민들레' 그대로 띄어서 쓰여 있었다.
꽃모양이 연꽃을 닮아서 목련이란다. 자생종 목련은 꽃잎이 6장, 중국이 원산지인 백목련은 꽃잎처럼 보이는 3장의 꽃받침 덕분에 꽃잎이 9장처럼 보인다. 백목련은 자생종 목련보다 꽃잎이 넓고 꽃잎을 오므리고 있지만, 자생종 목련은 꽃잎이 좁고 활짝 펼쳐져 있다.
꽃잎 앞뒤가 모두 자주색이면 자목련, 바깥쪽은 자주색이고 안쪽은 흰색이면 자주목련이다. 자주목련은 백목련과 자목련의 교배종이다.
왜벚나무라고 이름 붙인 일본벚나무는 쿠마린(coumarin)이라는 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향기가 좋다. 쿠마린은 바닐라 향과 비슷한 향기가 나는 유기 화합물로 향료로도 쓰이며, 타감작용 특성을 갖고 있다. 또, 비타민 K의 합성을 억제하기도 하고, 음식물이 상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해서 일본에서는 벚나무 잎을 떡을 만드는 데 쓰기도 한다. 벚나무 말고도 쿠마린을 함유하고 있는 식물에는 카시아 시나몬(계피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 쑥갓, 클로버, 딸기, 라벤더 등이 있다.
벚꽃이 피었을 때 냄새를 맡아보면 벚꽃은 냄새가 나지 않는다. 벚꽃이랑 비슷해서 사람들이 혼동하기도 하는 매화꽃은 냄새가 난다.
봄에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는 대부분 수꽃이다. 암수가 만나 번식을 하는 게 아니라 꺾꽂이나 삽목 방식으로 많이 심다 보니 가루받이가 되지 않고 대량 복제 번식이 되어 열매를 맺을 기회가 없어서 암술이 퇴화되었고, 그 덕에 개나리 열매는 보기 힘든 존재가 되어버렸다. 개나리의 학명 Forsythia koreana가 말해주듯 개나리는 한국 자생 식물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자생지를 찾을 수 없단다. 사진으로만 보던 개나리 열매를 나도 직접 보고 싶은 마음에 가을이 되면 개나리 열매를 찾아나서겠다고 다짐하지만 꼭 박자를 놓치고 버스 지나간 다음 생각이 나서 다시 내년을 기약하는 게 취미가 됐다.
개나리는 암술의 길이가 수술의 길이보다 긴 장주화, 암술의 길이가 수술의 길이보다 짧은 단주화가 있다. 눈에 많이 뜨이는 건 단주화란다. 개나리의 개는 야생 상태의, 질이 떨어지는, 흡사하지만 다른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다. 그러니까, 개나리는 '나리꽃'이긴 한데 진짜 나리꽃은 아니라는 얘기다. 나리꽃을 닮기는 했지만 나리꽃보다는 덜 예뻐서(질이 떨어져서) 그렇게 이름을 지었나 보다. 영어 이름은 딴판이다. golden bell이라고 부른다.
가지나 잎을 꺾어서 냄새를 맡으면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해서 생강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생강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암수딴그루이다. 산수유 나무랑 비슷해서 혼동하기도 한다는데, 모양이 달라서 조금만 신경을 쓰면 구분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매화꽃이 줄기에 바짝 붙어서 피고, 벚꽃이 꽃자루 끝에 피는 것처럼 생강나무는 나무줄기에 바짝 붙어서 풍성하게 피어 있고, 산수유는 긴 꽃자루 끝에 꽃이 핀다. 무엇보다 생강나무는 산에서 볼 수 있고, 산수유는 사람이 가꾸기 때문에 정원이나 공원에서 볼 수 있다.
소나무는 잎이 2개씩 나고, 미국이 원산지인 리기다 소나무는 잎이 3개씩 나고, 모양이 비슷해 헷갈리는 잣나무는 잎이 5개씩 난다. 바닷가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해송도 잎이 2개씩 난다. 리기다 소나무는 나뭇가지 말고 줄기에도 잎이 달려 있어서 굳이 잎의 갯수를 세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쉽게 구분이 간다.
소나무는 산성 토양에서 잘 자라고, 다른 식물의 생장을 억제한다. 그래서 소나무 아래를 보면 자라는 식물이 거의 없다. 잡초도 보이지 않는다. 끽해야 진달래나 철쭉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잎에서 타감작용을 일으키는 갈로탄닌이라는 천연 제초제를 분비하기 때문이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도 소나무 주변은 초록식물 전멸인데 철쭉이랑 영산홍만 보인다.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Japanese Red Pine(일본적송/일본붉은소나무)이었는데,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국립수목원에서 Korean Red Pine으로 고쳤다. Red pine 그러니까 '적송'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 표현이란다. 한국의 옛 문헌에서는 '적송'이라고 부른 예가 없단다. 식물의 공식 이름은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이름을 변경할 수 없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학명이 아닌 일반 이름은 각 나라의 언어로 이름을 지을 수 있는 덕분에 이름을 바꿀 수 있었다. 새로 얻은 영어 이름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건 아니다.
소나무 잎은 2년이 지나면 누렇게 변해서 떨어진다. 그런데도 항상 초록색으로 보이는 건 한 번에 다 떨어지는 게 아니라 조금씩 떨어지면서 그 떨어진 만큼 봄에 새로운 잎이 돋아나기 때문이다.
Korean Pine은 잣나무를 말한다. 소나무가 Korean Red Pine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면 Korean Pine이 소나무라고 착각할 듯하다.
동백나무는 새가 꽃가루받이를 도와준다. 동백꽃이 붉은색인 이유는 새가 붉은색을 잘 인식하기 때문이다. 꽃에서 향기가 나지 않는 이유는 새들은 냄새를 잘 맡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은 2∼3월에 붉은 꽃이 만발하는 동백나무가 아니라 '생강나무'를 말하는 거란다. 기름에 관한 책을 읽다가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가 자라지 않아서 동백기름 대신에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리에 발랐다는 내용을 접하긴 했지만, 김유정의 소설 제목이 생강나무를 가리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기름에 관한 책에서 처음 알았지만, 식물학 책을 읽다보니 생강나무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김유정의 동백꽃 얘기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잎에서 타감작용을 하는 juglone이 분비되어서 호두나무 근처에는 잡초가 자라지 못한다. 독성작용 덕분에 벌레의 위협도 거의 없다.
유칼립투스 잎은 섬유질이 많고 영양이 낮고 대부분의 동물에게는 독성이 매우 강해서 그 독소를 빠르게 씻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코알라의 먹이가 된다. 유칼립투스는 잎에 들어있는 독성 화학 물질을 해독하는 능력을 가진 코알라의 소화기관에 특화된 먹이라고 할 수 있다. 코알라는 소화 속도가 느려서 에너지가 많이 필요 없는 데다가 유칼립투스 잎에 칼로리가 너무 적어서 18∼22시간이나 쉬거나 잠을 자다 보니 최소한의 에너지만 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