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주는 인생

요즘 에세이스트의 에세이 (이슬아)

by 로지

이슬아 작가를 처음 알게 되고 「깨끗한 존경」을 도서관 관심 목록에 담아두고는 한참이 흘렀다. 새로 보고 싶은 책들이 계속해서 생겼기에 신규로 내 목록에 업데이트되는 책들 위주로 보다가 친구가 이슬아 작가를 좋아한 다해 눈길이 다시 갔다. 기대보다도 훨씬 젊은 작가님의 생각들과 그 표현력에 많이 놀라고 감동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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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읽고 (가끔) 쓰는 삶을 계속해서 살고 있는 요즘, 읽으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는 글을 만나면 참 좋다. 더 생각하게 하고, 더 쓰게끔 만드는 글.




살아남는 이야기는 끝이 없다. 나이 든 언니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며 말하곤 한다. 하나의 고생을 지나면 또 다른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고. 그중에서도 어떤 언니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끝내주는 인생이었다고. 그 언니의 말을 들으면 너무 용기가 나서 막 웃는다.



흔히 말하는 '별거 없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공감을 불러일으킬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 아주 소소하고 작은 생각들 역시도 비슷하다고 느끼는 누군가를 만나면 참 좋은 것처럼. 이렇게 가벼우면서도 때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작가님을 나도 오랫동안 좋아할 것 같다. (이후로 난 이슬의 작가님의 책을 꽤 많이 읽은 팬이 되었다;)




KakaoTalk_20240219_102250409_03.jpg?type=w1 「끝내주는 인생」 중 이훤 작가님의 사진





일간 이슬아라는 온라인 유료 연재 플랫폼을 운영하며 (현재는 휴재 중) 월화수목금 글을 쓰는 삶으로 스스로 밀어 넣었던 작가님의 많은 글이 더 궁금해졌다. 특히 작가님의 책들은 가족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데 나 역시 지극히 평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나의 가족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작가님의 강연 후기를 찾아보다가 이런 글을 보았다. 독자가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라고. 그러면 독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업작가라는, 마법 같고 신기루 같은 이 시절을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마지막 문장을 쓰게 하는 건 언제나 독자다. 독자가 글을 완성시킨다는 진실을 작가만큼 사무치게 아는 사람이 또 있을까. 그들이 기다려주기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날마다 겨우 글을 완성한다.



별것 없는 내 글을 진심으로 읽어주는 사람은 손에 꼽을 만큼 적지만, 그래도 진심은 언제나 한가득 와닿으니까. 그래서 솔직한 마음을 담담히 담아낼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아주 작고 소중한 나의 독자들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미루고 미루던 책을 다시 정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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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이슬아

출판 : 디플롯

발매 : 2023.07.03.


목차(의 일부)


- 내 손을 떠나는 이야기 - 이훤

- 프롤로그. 노인들은 굽어살핀다

-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고 나쁜 여자는 어디에나 가지만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

- 나랑 가장 닮은 너를 보면

- 그에게서 최고의 나를 발견한다.

- 신인들

- 넓은 이와 어린이

- 종이책의 미래

- 마감을 감당하는 이에게

- 끝내주는 인생

- 에필로그. 나만은 아닌 나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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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귀한 나무를 어디서 산 거냐고 묻길래 친구가 망해서 나한테 맡겼다고 대답했다. 빚이 산더미라는 소식에도 할머니는 별 동요가 없었다. "그런 거 가지구 망했다고 하면 안댜." 안 죽었으면 됐다고, 서른이면 아직 한창이라고도 덧붙였다.


쉽게 '망했다'라는 얘기를 하던 어린 시절을 지나 어느덧 그 '망함'의 의미가 나에겐 더 깊어졌다. 그래서 쉽게 쓰지 못하는 말이 되었다.

망(亡) 하다. : (동사) 개인, 가정, 단체 따위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끝장이 나다.

할머니의 말처럼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진짜 망(亡) 하지 않을 테니까. 망했다는 삶 속에도 여전히 희망(望)은 존재할 테니까.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있고 그런 게 모여 생활이 된다. 생활의 총합은 인생이 되고 말이다.


생활의 총합이 인생이 된다는 말이 참 좋다. '수학해야지' 하는 내 말에 '아 하기 싫은데'라고 답하는 아이. 억지로 공부만을 시키고 싶진 않지만 이미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상위학교로 진학을 하고 앞으로 '공부'에 꽤 오랜 시간을 포커스 맞춰야 할 아이. 그런 아이의 앞날엔 그 '하기 싫은' 일이 참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더 알게 되겠지. 하고 싶은 것보단 하기 싫은 일을 견뎌야 하는 시간이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란 것도. 그러다 더 많이 자라면 그 하기 싫은 것들도 잘 모여서 생활이 될 테고, 그 생활이 인생이 되는 걸 깨달을 날이. 물론 하고 싶은 것도 많이 하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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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고통이 같은 것임을 아는 자의 힘, 위험을 숨 쉬듯 감당하는 자의 힘, 견딜 수 있다는 걸 배우지 않아도 DNA로 그냥 아는 자의 힘, 날마다 점점 강해질 그 힘.


모든 삶이 고통으로만 가득 차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고통을 빼고 논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 인생 총량보존의 법칙처럼 모든 행복은 고통과 동반됨을 꽤 잘 알게 되었다.

슬픔과 힘듦 혹은 위험을 수없이 감당하고 겪으며, 그 온전한 경험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힘. 그 힘이 차곡차곡 쌓여 단단해질 나를 그려본다.


많은 고난과 괴로움 역시 견디다 보면 언젠가 그 끝이 있다는 경험이 늘어갈수록, 잎으로 가득 찬 나무처럼 풍성해져 가는 삶이 점점 더 좋아진다.




달리기가 잘 되는 날에는 누가 나를 뒤에서 밀어주는 느낌이 든다. 그게 누구냐면 지난 며칠간 꾸준히 달려놓은 과거의 나다. 그런 날들이 쌓였을 땐 몸이 마음을 거뜬하게 이끌고 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달리는 날에는 마음이 몸을 이끌어야 한다. 몸이 안 따라줘도 마음의 힘으로 살살 달래며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


며칠 동안 새벽 기상을 힘들지 않게 하고 소소하지만 부지런한 나의 아침 시간을 보내면 참 좋다. 달리기 할 때 누가 밀어주는 것처럼 나를 이끌어주는 어떤 기운이 있는 느낌. 주말에 잠을 잘 자지 못했던 월요일 오늘 아침 같은 날은 내 마음 없이는 몸을 일으키기가 너무 힘들다. 몸이 안 따라주지만 마음의 힘이 필요했던 날.


예상대로 잘 풀리는 날의 바탕엔 꾸준히 해온 나의 과거가 바탕이 됨을 다시금 깨달았다. 마음을 달래는 것보단 꾸준한 실행이 조금은 더 쉬운 선택 같아. 비록 루틴은 실패했지만, 즐겁게 주말을 보낸 힘으로 내일 아침은 마음을 더 잘 달래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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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지만 나는 눈시울이 벌게져 버린다. 절벽 같은 세상에서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다는 게 얼마나 덜컹이는 일인지를 곱씹으면서도, 누가 내 얘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듣고 싶어 한다는 게 너무 고마워서.

다음 이야기가 무엇인지 할머니도 나도 모른다. ... 나는 무대에 서서 수십 갈래로 뻗어나가는 내 인생을 본다. 그중 살아볼 수 있는 건 하나의 생뿐이다.



그 순간 내 마음 한편에 커다란 종이 올린다. 이제하의 말은 이런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와의 시간이 그렇게 좋았다니. 소중한 사람에게 진심으로 추천할 정도라니.... 완전 감동이야' 태어나고 자란 어린이가 어른에게 그런 말을 돌려준다. 나는 두 세대 사이로 넘실거리는 사랑을 본다. 이상한 어른인 나도 언젠가는 그 파도를 타게 될까.



작가님이 삶이 달라지는 것이 기대된다는 할머니.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길을 조심스레 추천하는 아빠의 말에 감동받은 아이. 이런 따스한 사람들을 만나는 작가님의 마음엔 어떤 강한 물결이 일어날까. 사랑이 넘실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멋진 파도를 타게 될까.


나 역시 수 십 개의 갈래 중에 선택한 나의 길들이 얼마나 멋진 파도를 타고 드넓은 바다를 향해 갈지 그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가득 차 오른다.







BOOKMARK


- 사랑받지 않으며 용기를 잃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러면 오직 한 사람만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기에 취했을 때는 한 사람이라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결코 알 수가 없었다.


- 찬바람 불면 왠지 속이 깊어져야 할 것 같은데, 더 점잖아지고 어른스러워져야 할 것만 같은데, 아마도 잘되지 않을 것이다.


- 사랑도 우정도 실은 번갈아 가며 아기가 되는 일인지도. 나를 어떻게 할지 너에게 맡겨 버리는 일인지도. 자신을 돌볼 특권을 서로에게 바치는 동안 우리 인생은 지극히 타의 주도적으로 흐른다. 나는 그의 손 안에서, 그는 나의 손 안에서 마음껏 어려진다.


- 나에게나 남에게나 사랑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한 나다움,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건지 모르겠는 그 자기다움을 지니는 것이 얼마나 도달하기 힘든 경지인지 다들 안다.


- 자신의 안팎을 오로지 혼자서 가꿔온 사람도 있을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이제는 내 삶이 타인들의 시선에 대롱대롱 매달린다는 것을 어떤 유감도 없이 이해한다. 그러나 누구의 시선에 매달릴지 결정할 권한이 내게 있음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또한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타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 그러니까 이것은 인생을 감당한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다. 알고 보면 모두 각자의 삶에서 일루수다. 나는 동파 방지를 위해 아주 살짝만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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