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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여운 Apr 06. 2024

나의 단 한 사람들

그녀들의 환대


나는 리더입니다.

사랑하는 글벗의 동네책방에서 슬로리딩 독서모임을 하고 있거든요.


Leader 아니고 Reader! 제가 뭐라고 감히 누구를 이끌겠습니까? 함께 읽을 뿐이지요. 가끔 공지사항을 챙기거나 다음 읽을 책들의 스케줄을 짜는 정도로 품앗이를 하고 있답니다. 소소한 저의 즐거움이기도 하지요.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내어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을 만큼 소중합니다. 애정을 넘어 애착을 가지고 있는 모임이기도 하지요. 책벗들과 함께 다양한 책을 천천히 꾸준히 집밥 먹듯이 골고루 꼭꼭 씹어 읽으며 느낌과 생각을 나눕니다. 간식과 티타임도 나누지요. 서로 자신만의 한 단어, 한 문장을 음미하고 향유합니다. 이 나눔과 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사건, 사고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예방하고 치유하고 있는지 모르실 거예요. 병원비나 약값보다 확실히 착합니다. 마치 브런치 타임처럼요. 또 하나의 안전하고 아름다운 연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곳에서 치유되고 충전됩니다. 밖에서 입는 여러 다양한 유니폼은 벗어던져 버리고 이곳에서만큼은 가장 자신다운 모습으로  머무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아마도 이것이 저의 정체성이자 본케인 듯합니다. 이곳에서의 시간이 저에게는 동네 가정의학과이자 약국! 깊은 산속 옹달샘, 사막의 오아시스, 무릎에 좋은 콘드로이친입니다. 사람에 대한 배신감과 상처, 실망으로 무릎이 꺾여 주저앉아있던 저에게 다시 일어설 힘이 되어 준 곳이 실제로 이곳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모여 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사람과 책과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책을 읽고 있는 어린 친구들을 보면 얼마나 어여쁜지 모릅니다. 아무래도 저의 주식은 밥이 아니라 사랑인가 봅니다.  


오늘은 최진영 작가의 <단 한 사람> 완독 모임이 있던 날, 활짝 핀 튤립이 된 그녀들이 환한 미소로 더없이 반갑게 맞아줍니다. 특별한 무엇이 없어도 언제나 꽃 같은 그녀들의 환대입니다. 이보다 더 좋은 순간이 있을까요. 책을 이야기하고, 책을 통해 사람과 삶을 이야기하고, 책 속의 인물을 빚대어 자신을 이야기합니다. 같은 페이지를 펼쳐 놓고서도 모두가 제각각 서로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습니다. 그렇게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우리네 삶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인생의 페이지를 함께 켜켜이 쌓아갑니다. 책을 읽듯이 누군가 나의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 우리들은 이곳에 모이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도 아닌 책연(冊緣)으로 잇닿은 관계입니다. 그녀들이 저에게는 단 한 권의 책, 단 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합니다. 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오늘 하루를, 무사한 일상을 살아냅니다.


다닐 수 있는 어딘가가 있고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까닭이 되어 주기도 합니다. 머리를 감지 않고도 입은 그대로 슬리퍼를 끌고서 들러 권, 나눌 있는 책방이 우리 앞에 있다는 축복일 것입니다.  


책방이 약방입니다.







사랑엔 낭비가 없다
더 많이 주었다면
그 풍요로 이미 보상받았다
그 사람 있었기에
불 꺼진 한 세월이 밝고 따뜻했다고
그리 알 일이다.

- 김남조 '낭비 없는 사랑'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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