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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에서 온 모시

다 같은 사람

by 햇살나무 여운


"괜찮아?"


뜻 밖에도 가장 선명한 한국어로 건네온 첫마디는 그의 선한 눈빛을 닮아 있다.


외국인근로자 숙소로 쓰고 있는 상가주택 2층에 전기콘센트를 고치러 들른 길이었다. 사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괜찮냐고 묻는 그의 질문은 "작업이 문제없이 잘 되고 있느냐"는 뜻이었다.


사수와 모시는 온갖 손짓 발짓에 미소를 더해가며 어느새 벌써 통성명을 하고 오래된 친구처럼 (아메리칸 스타일인지, 방글라데시 스타일인지, 요즘 유행하는 스레드 스타일인지) 반말을 주고받는다. 멀리서 분위기만 얼핏 보면 한국말이 매우 유창해 대화가 원활해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모시는 사실 기본적인 인사 이외에 한국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번역 어플을 써도 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굳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침 휴무였는지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화상통화를 한참 동안 이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언어만 다를 뿐 익숙하고 친근한 톤이다.


"와이프?"


사수는 조수를 가리키며 "우리 와이프!"라고 소개하며 모시에게도 와이프가 있느냐고 묻는다.


"와이프!"

모시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끄덕끄덕한다. 긴 말이 필요 없구나. 단어 하나면 다 통한다.


사실 이번엔 조수는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 꺼림직한 느낌이 없잖아 있었다. 외국인근로자들이 사는 집이어서였는지, 아니면 남자들만 사는 집이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둘 다였는지도.

네 명 정도 함께 쓰고 있다는 숙소는 막상 들어서니 우리집보다 깨끗하고 단정했다. 아마도 살림이 적어서일 것이다. 각자 여행용 캐리어 한두 개가 전부다. 우리와 똑같이 삼성 노트북에 삼성 휴대폰을 쓰고, 책을 읽고 종교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작은 방 한 칸 얼마 안 되는 살림살이 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한 가지가 있다. 그는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몸을 뉘어 쉬는 자리에서 바라다 보이는 벽에 그림을 걸어둘 줄도 아는 이였다.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가장 먼저 무슨 말을 겪고 배우게 했을까?


"괜찮아?"


그리 고운 말들만을 느끼고 배우게 하지는 않았음이 뻔히 그려짐에도 불구하고, 모시가 우리에게 가장 먼저 건넨 괜찮냐는 그 말에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별생각 없이 고른 단어일지는 몰라도, 그 수많은 말들 중에 그 말을 배우고 쓰는 모시라는 한 존엄한 인간이 있다.


그에 비하면 뱃속에서부터 수십 년을 듣고 배우고 읽고 쓰고 말하며 유창함을 뽐내는 모국어 앞에서도 정작 우리는 그 말이 꼭 필요한 순간에조차 스스로가 얼마나 인색하고 모질었는지, 얼마나 후졌는지 되새기게 해 주었다.


우리 참, 오지게 후지다!



모시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




https://youtu.be/dcyIOU6YVRQ?si=wIQI-0fZpLZVAKI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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