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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살고, 잘- 살고!

상대값 vs 절댓값

by 햇살나무 여운


뭘 저렇게 겁도 없이 덤벼들어서 마구잡이로 뜯을까? 잘못되면 어떡하려고? 뜯었는데 못 고치면 어떡하려고? 밖은 천 길 낭떠러지인데, 뜯다가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사수의 뒤통수에 조수의 소리 없는 잔소리 포화가 내리 꽂힌다.


안방 안쪽 욕실 프로젝트 창문이 안 닫힌다고 수리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처음에 몇 번 열었다 닫았다 창문을 만지작거리던 사수는 그대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창문을 들입다 뜯어낸다. 조수는 환장하겄다. 아무런 안전장치나 그물망도 없이 저게 저렇게 막무가내로 덤빌 일인가? 아파트 17층 높이에 밖은 훤히 뚫려있어 까딱 잘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는 일인데. 안 되겠다 싶으면 그냥 두셔도 된다고, 의뢰인이 분명 말했는데 그걸 굳이 손대고야 만다. 사수의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는 것인가. 후퇴라고는 못 배운 삶이었나. 하긴 사수가 걸어온 인생길이 그야말로 혈혈단신에 살얼음판에, 뒷걸음 칠 여지라고는 없는 외길 낭떠러지였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떻게든 스스로 방법을 찾아 헤쳐나가야 한다는 그 한 마음으로 살아온 고수였다. 고독한 사수!


반면에, 조수는 점점 더 '소금장수와 우산장수의 어머니'를 닮아간다.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 투성이다. 겁도 많고 걱정은 더 많다. 그러고 보니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사서 걱정하는 사람이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그 한 번에 또 전부를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먹고살기 위해서 가릴 일이 어디 있느냐고, 일단 하고 본다는 그 막중한 책임감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조수 눈에 너무 무모해 보이는 위험은 그만 무릅쓰면 하는 바람에 속이 상한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하는 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할 틈이라도 주던가.


안다. 조수의 눈에 그리 보일 뿐 사수는 다 방법을 생각하고 계산해서 누구보다도 신중하고 안전하게 작업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 거칠고 막무가내로 느껴져 지레 겁을 먹고 잔소리를 퍼붓게 된다는 것도. 작업이 힘든 것보다 조수의 잔소리와 부정적 감정이 사수를 더 위험에 빠뜨리고 힘들 게 한다는 것도. 알면서도 아직 다 못 믿나 보다. 조수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사수가 가장 고되고 힘들다는 걸 모르지 않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정말로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버티며 꾹꾹 눌러 참는 탓에 사리가 생길 지경이다. 바깥일은 모르는 게 속 편하다는 말이 정말 맞다. 면전에 대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무시와 멸시와 모욕까지도 때로는 함께 뒤집어쓰고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8월에 마가 꼈나. 남들 다 떠나는 휴가철에 조수에게는 한껏 드높은 고비가 찾아온다. 너무 더운 탓이었는지 인내심이 수박 꼭지마냥 시들다 못해 말라비틀어졌다. 바깥일에 가족일까지 매번 혼자서만 전부 다 감당하고 도리와 의무를 지키려 드는 사수에게 "힘들어요! 힘들다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말잘하는 사수는 늘 비교급으로 되받아친다. 그리고는 조수에게 늘 더 강해져야 한다고 높은 기준을 들이민다. 말로는 못 이긴다. 감정은 논리를 못 이긴다. 그럴수록 감정은 거세지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울 지경에 이른다. 이때 정말 잘- [자ː알] 말해야 한다.


"힘든 거 이미 충분히 모르지 않지만, 서로 기본적인 조건값이 다릅니다. 이럴 때는 그냥 있는 그대로 절댓값으로 좀 받아들이라고. 쫌!"


사수도 미안했는지 아직 잠든 새벽녘 혼자 깨서는 조수의 팔다리를 말없이 주물러 준다. 아이고, 아이고! 뼈 마디마디마다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안마의자를 살까? 6개월 할부?"




막무가내로 뜯어낸 듯 보이는 프로젝트 창문은 다행히 잘 맞는 경첩을 찾아서 다음 날 무사히 다시 체결해서 복구했다.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에 무한반복이다.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린 <첫 키스만 50번째>의 여주인공 루시도 아니면서, 조수는 언제나처럼 또 금세 해맑게 웃는 얼굴로 오전에 끝낼 거라는 사수의 그 희망찬 거짓부렁을 믿고 길을 나선다. 그리고는 또 어김없이 늦은 저녁을 꽉꽉 눌러 다 채우고 돌아오는 어제와 오늘들. 현장에 가면 일이 뜻대로 계획대로 풀리지 않는 것도 알고, 어쩔 수 없이 변수나 난관도 많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고 끊어야 할 때는 끊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일 저 일 그 자리에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며 끝을 모르는 사수의 뒷모습을 몇날며칠 하루 온 종일 보고 있노라면, 처음에는 설마 적당히 하고 곧 끝내겠지 했다가 점점 화가 났다가 꾹 참고 여기까지만 하자고 했다가 결국엔 땀인지 콧물인지 눈물인지 오물인지 흠뻑 젖어서는, 이제는 화낼 마음도 힘도 온데간데 없고 헛웃음이 나고 만다. 이 무슨 상실의 5단계도 아니고! 망연자실의 5단계인가? 마지막 한 끗까지 거듭 처음과 같은 정성을 다하는 그 모습에는 그 누구라도 숙연해질 수밖에. 본래 그러한 사람인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몇몇 어른들께서 사수와 조수를 보며 말씀하신다.


"참 어여쁘게 잘-[자ː알] 산다."


그 말씀 지키면서 살고 싶다. 잘살기도 하면서 잘-[자ː알] 살기까지 하면야 금상첨화이겠지만, 아무리 이 집 저 집 다녀도 보기 참 드문 것을 보면 그것은 그야말로 큰 복이거나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남들처럼 잘살기 바라지 않으니, 못 잘살아도 되니, 그러니 제발 우리 함께 가늘고 길-게 잘-[자ː알] 살았으면 좋겠다. 이제 더 이상 혈혈단신 외길이 아니라고. 그러니 너무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게, 서로 너무 망가지지 않게 복구할 수 있을 때 지키고자 노력하면서 체력도 심력도 잘 안배해 가면서 부디 더불어 멀리까지 오래 걷고 싶다.


못 잘살 수는 있어도 잘못 살지는 말아야지.....





세탁기까지 드러내고 그 아래까지.... 저 뒷모습에 화를 낼래야 낼 수가 없다. 숙연해지기까지...


꽃모닝에서 꽃이브닝까지! 꽃도 문닫고 퇴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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