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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레몬 Jan 23. 2023

04. 나는 너의 아주 오래된 당근이 될 거거든

아무리 구매하기 전 생각을 하고 또 해도 구입하기 망설여지는 것들이 있다. 갖고 있는 소지품 중에는 딱히 대체될만한 것이 없으나, 과연 내가 이 물건을 오래 쓸 수 있을지 망설여지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때는 당근마켓이라 렌탈 서비스를 먼저 알아본다. 




며칠 전까지도 구입을 망설였던 물결고데기가 있었다. 올해는 파마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뒤 봉고데기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봉고데기로는 내가 원하는 물결모양의 머리를 내기가 어려웠. 유튜브로 ‘봉고데기 물결펌’을 몇 번 검색했더니 알고리즘이 귀신같이 ‘보00’회사의 물결고데기 사용후기 영상을 띄워주었다. 굉장히 쓰기 편해 보이고 결과물도 괜찮아 보였다. 


물결고데기를 구입하기 위해 검색했는데, 생각보다 가격대가 높았다. ‘정말 봉고데기로 물결모양의 머리는 완성하기 힘든걸까?’ 유튜브로 몇몇 고수들이 봉고데기로 물결 머리를 하는 것을 보며 따라해 보았으나 현재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물결머리가 아니라… 해그리드 머리가 될 뿐이었다.


문득 당근마켓에는 조금 더 저렴한 가격대의 물결고데기가 나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근마켓을 검색해보니 물결고데기를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내가 원하는 가격대로 내놓은 사람들이 없어 좋아요를 눌러놓았다. 적당한 가격대로 내려오면 구입해야지. 어쩌면 그 전에 마음을 고쳐먹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몇 달 전에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너무 갖고 싶었다. 하지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얼마나 질리지 않고 사용할지 알 수가 없어서 렌탈 서비스를 이용해보았다. 역시나, 3일안에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질려버렸다. 즉석으로 사진이 나온다는 점은 재밌었지만, 일단 사진이 너무 작고 생각보다 색감이 흐릿하며 필름비가 너무 많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렌탈 비용이 좀 들었지만 안 쓰는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집 한편을 차지하는 일을 예방할 수 있었으니 보람 있는 소비였다.


당근마켓이나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처럼 반대로 내 집에 잠들어있는 물건들도 제 주인을 찾아줄 수 있다. 예전에는 그냥 안쓰는 물건을 뭉텅이로 연말에 기부하며 누군가는 알아서 잘 써주겠지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면 요즘은 시간을 조금 더 들여서 진짜 이 물건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다. 안 쓰는 수건은 유기견 보호소에 택배를 보내고, 안 쓰는 영어책은 책이 정말 필요한 사람을 찾아준다. 당근마켓에 나눔 글을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보이는데, 그 중에서 가장 그 물건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에게 물건을 나눔한다. 그 사람이 판매했던 물건들 목록을 보면 대충 나이와 성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는 유아용 영어책을 나눔으로 올렸다. 나눔을 받으러 오신 분은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분이었고,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가니 이제 영어를 제대로 가르치려 준비 중이었다. 영어책을 전달해드렸는데 영어공부방법에 대해 궁금해 하시기에 과거 초등 영어를 과외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초등영어 공부 방법을 공유해드렸다. 이렇게 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 주인을 잘 만나 제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잘 쓰일 것 같은 예감이 들 때,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상쾌해진다. 가끔은 물건들의 웃음소리도 들리는 것 같다. 자기 쓰임을 다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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