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소설가(2012), 오르한 파묵

by 봄눈

"아편을 피운 것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소설과 소설가(The Naive and the Sentimental Novelist), 민음사


파묵의 소설에 대한 생각, 소설 작법을 수필처럼 쓴 내용이다. 하버드 대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소설 작법이라기보다는 파묵의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나에게 소설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느낌이다. 파묵의 모든 서술이 그렇듯이 진솔하고 빡빡하게 다가온다.

<안나 카레리라>의 한 장면


안나 아르카지 예브나는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했지만, 책을 읽는 행위,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반영을 좇는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로서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p.17

안나는 브론스키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읽어 나가지 못했던 것입니다. p.17


나도 20살 무렵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내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는지 그 이유를 이렇게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그저 모호하게 왜 나는 책을 읽을 수 없을까만 궁금해했다. 나는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에서 내 발로 뛰면서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 예술의 강력한 특징은, 우리가 작가를 가장 많이 잊는 순간, 그가 텍스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p.52

우리가 '캐릭터'라고 부르는 인간은 역사적으로 가공된 존재이며, 소설 주인공의 캐릭터 역시 우리가 믿기로 선택한 책략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 . p.68

극 중 인물들의 캐릭터가, 마치 우리 삶이 그러하듯이, 독자에게 공공연히 말해줘서는 안 되며 독자 스스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p.75

소설가들은 먼저 A, B, C라는 소재를 설명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후에 이 소재들을 설명하는 데 가장 적합한 주인공들을 상상합니다. 나는 항상 이렇게 해왔습니다. p.77


결국 소설이란 순수한 무엇이 아니고 책략이고,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파묵이 말하는 부분이다. ‘의도’ 즉 ‘중심점’에 대해서 파묵도 이야기한다. 그것이 소설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의도’없이 쓰인 글은 없다. 그런데 그 ‘중심부’를 저자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데에 소설의 매력이 있다. 자신이 이 이야기를 왜 쓰는지 잘 모르면서 쓴다. 아닌가? 저자는 자신이 쓰는 이유를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의식적으로는 알고 있을까? 나는 아니다에 한 표이다. 자신도 모르는 이야기의 중심부를 남들이 어떻게 알아내는가?


IMG_4921.jpg <소설과 소설가> 책

파묵은 소설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개진한다. 읽으면서 마음에 남는 부분을 발췌해보았다. 소설을 쓰면서 파묵이 말하는 이러한 경험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다.


나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소설 쓰기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합니다. p.73

나 자신을 잘 이해하고, 이해한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다면, 모든 인간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신중한 낙관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휴머니스트와 비슷한 관점을 나는 가지고 있습니다. p.77

이야기와 별로 관계가 없고 사람이나 사물이 없는 풍경 묘사라 할지라도 소설 독자들은 주인공의 감정적, 정신적 세계의 연장 선상에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p.79

나에게 소설 쓰기란 사물과 이미지로 둘러싸인 풍경 속에서 소설 주인공들의 생각과 감각을 감지해 내는 기량이라고 지난번 강연에서 말했습니다. p.89

소설가는 눈앞에 떠올린 이미지가 오로지 단어로 옮겨졌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단어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을 상상하는 법을 배울수록 머릿속에 있는 시각적, 단어적 사고의 중심부들이 서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p.94

소설 읽기는 단어들로 묘사된 이 순간들 (시간)을 시각화하는 것입니다. p.97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내가 스물두 살 때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소설이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정도가 그림에 비해 훨씬 더 깊기 때문입니다. p.98

굳이 글이 아니라 그림에서 출발하더라도 소설을 위해 필요한 밀도로 과거를 상상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나는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보물 창고에 보관된 16세기말 책과 고문서들 속에 있는 그림들을 세세하게 묘사하고, 나 자신을 이 세밀화 속 영웅, 사물, 심지어는 악마와도 동일시함으로써 어떤 세계를 재현해 보려 시도했습니다. p.100


파묵은 어려서 화가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시각에 대해서 가장 고민하는 작가인 것 같다. 시각적 자극과 글을 연결하는 부분이 나에게는 매우 좋았다.


이 무렵 나는 7살부터 꿈꿔왔던 화가의 꿈을 접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이 결정은 행복해지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p.113

격동적인 풍경화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스트린드 메리는 <하녀의 아들>이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그림 그리는 것이 자신을 "아편을 피운 것처럼,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소설에서도, 그림에서도 가장 숭고한 목적은 이러한 행복일 것입니다. p.114


글은 행복하기 위해서 쓰고, 그림은 행복하기 위해서 그린다.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아편을 한 것처럼 행복하다. 이 부분도 나에게 와닿았다. 글을 쓰는 것이 답답하면, 글을 쓰면 안 된다.


XL.jpg <소설과 소설가> 책표지


반대로 내가 태어난, 상대적으로 가난한 비서구 세계에서는 누구를 또는 무엇을 대변하는가 하는 문제가 문학에서도 소설가에게도 자칫 악몽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비서구 세계의 가난한 나라에서는 작가들이 대부분 상류층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p.140

하지만 고통에 매몰된 나머지, 그 끔찍한 경험들을 정체성의 일부로 끌어안아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소박함을 지키기란 얼마나 힘이 드는지요. p.142


이 부분은 작가로 글을 쓰면서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부분이다. 이런 고민을 안 한다면 생각이 깊은 작가는 아니겠지.


하지만 우리 현대 독자들에게 <전쟁과 평화>의 중심사상이자 중심부는 톨스토이가 소설 후기에 논했던 '역사의 의의' 또는 '역사에서 개인이 차지하는 역할'이 아닙니다. 소설 캐릭터들이 일상생활에 보여주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세세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모든 삶을 하나로 연결하는 맑고 투명한 시선입니다. p.156

내게 소설 창작이란 중요한 것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중요한 것처럼 언급하는 예술입니다. p.163


이 부분이 파묵이 추구하는 소설의 형태인 것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세세함. 좀 더 인류애적인 거창한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런 전략으로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다는 것이 더 놀랍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내 이름은 빨강(1998), 오르한 파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