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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머리 제이슨 Mar 28. 2020

아내는 '소고기'라고 외쳤다

 글을 쓰는 것은 A에서 B로 생각을 전달하는 정보의 교통이다. 하지만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유희가 될 수도 있고, 여가가 될 수도 있다. 주가가 폭락한 어느 우울한 목요일, 아무 글이라도 써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뭘 써야 할까? 아무런 주제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런 소재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래나 저래나 상당히 우울한 날이었으니. 뇌가 피곤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너무 글을 쓰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내는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퀴어 소설을 읽고 있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아내에게 말했다. "아무거라도 좋으니까 단어를 하나 던져줘. 그걸 가지고 수필을 써 볼게!" 아내는 소설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듣는 둥 마는 둥 하다가 4초 뒤에 대답했다. "소고기!"


 그래서 오늘은 소고기에 대해 써 볼까 한다.


1. 소고기는 원래는 문법적으로 틀린 단어다. '쇠고기'라고 해야 철자가 맞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소고기라고 썼기 때문에 결국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세상에는 그런 게 많다. 표준이 아니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쓰게 되면 표준으로 바뀐다. 단순히 철자법 같은 것이면 그래도 괜찮다. 문제는 불의에 있다. 의롭지 못한 것이라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취하게 되면, 그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정의는 상당한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

 

2. 나는 원래 엄청난 미트러버였다.


3. 회사 회식 때 단체로 경기 남부 시골에 있는 소고기집에 간 적이 있었다. 비닐하우스에 대충 테이블을 세팅해 놓고 막대한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는 경기도 좋았고, 회사는 돈을 잘 벌었다. 그래서 1인당 예산이 4만 원인가 5만 원이 나온 회식날이었다. 모두가 기쁠 정도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고, 모두가 질릴 정도로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당연히 나도 배가 터지도록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왕 씨 성을 가진 친한 사수 형님이 소고기를 제대로 굽는 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 형님이 구워준 고기는 특히 더 맛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날에 있었다. 나는 건강검진을 받았고, 상상을 초월하는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기록하였다. 병원에서 회사로 연락을 하여, 부서장님이 재검사를 받으라는 공지를 전달해 주었다. 건강검진 재검사는, 말하자면 건강 열등생들의 열등 인증의 장이었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 재검사일에 맞춰 사내 병원에 갔다. 20대는 나밖에 없었다. 이름 모를 어떤 부장님이 재검사 대기열에 쭈뼛쭈뼛 다가서는 나를 흘끔 보았다. 배가 한라산만큼 나오고 머리가 벗어진 분이었다. 서부영화에서 동네 술집에 낯선 총잡이가 들어서면 그렇게 흘끔 쳐다보는 장면이 꼭 나온다.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20대에 나올 수치는 아니라고 하며, 반드시 운동을 하고 고기를 줄이라고 말해 주었다. 당시 나는 주 3회 헬스장에 나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고기만 문제였다.


4. 그럼에도 한 동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찔한 기억도 몇 번이나 있었다. 현재까지 세 번의 통풍을 겪었다. 보통 통풍은 고기와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에게 발생한다고 하는데, 나는 맥주를 안 마신다. 그러면 고기의 단독범행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육식생활은 큰 즐거움이었다. 통풍이 걸린 후 정말 괴로웠던 것은 관절 통증이 아니라 통증 때문에 맛있는 음식들을 마음껏 못 먹는다는 답답함이었다. 


5. 하지만 이제는 소고기를 먹을 만큼 먹었다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는 채식에 관심이 많아졌다. 소고기라는 단어는 예전에는 설렘의 대상이었다. “오늘은 소고기를 먹으러 가볼까” 누군가 제안한다면 가슴이 두근두근하고 뭔가 우정이 더 돈독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채식 비중을 조금씩 늘리면서 소고기를 흠모하는 두근거림도 점차 사라졌다. 생각보다 고기를 먹지 않아도 맛있는 음식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버섯과 콩을 잘 요리할 수 있으면 크게 고기반찬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특히 넷플릭스의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되었다. 무병장수에 대한 생각들에서 나아가 운동 능력에도 채식이 더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컨셉에 공감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외국의 부자들 중에는 비건도 상당히 많다는 것이 떠올랐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는 부자들이 왜 채식을 하는 것일까? 부자들의 유일한 소망은 건강히 무병장수하는 것 밖에 없다. 나머지는 돈이 다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이 채식을 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6. 1년 사이에 채식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지만, 역시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특히 다른 사람과 밥을 먹을 때, 나는 고기 안 먹어요 같은 선언을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플렉시테리언(Flexiterian)이라고 하며 평소에는 채식 위주로 살다가 사회적 필요에 따라서 육식을 기피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지금 내 처지는 그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다만 사회적 필요가 생각보다 상당히 자주 돌아온다는 게 문제다. 일단 같이 사는 아내가 고기를 먹을 때... 혼자서 안 먹겠다고 진상 피울 순 없기 때문이다. 채식도 중요하지만 가정의 평화도 중요하다. 


7. 나 자신이 정말 초라하게 느껴지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고기를 안 먹으려는 의지가 쉽게 굴복되는 것도 문제지만, 막상 그렇게 한 점 집어먹고 나면 그게 또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참숯이 불지옥 같은 열기를 내뿜는 불판에 제대로 구워진 소고기를 떠올리면 아직도 군침이 돈다. 두툼한 두께에 무쇠 팬에 구워진 팬 스테이크를 생각하면 디종 머스터드 향이 저절로 떠오른다. 하동관 특곰탕에 따르는 깍두기 국물과 한우 암소 수육의 조화는 여전히 아름답다. 이런 상상을 하면 자동적으로 오감이 깨어난다. 파블로프의 개가 된 기분이다. 


 그렇게 소고기는 나를 괴롭고도 행복하게 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비건이 되고 싶다. 하지만 소고기도 맛있다. 그래도 채식이 더 좋다. 좋아해야 한다. 그러나 역시 소고기는... 


 소고기라는 주제로 이렇게 번민 어린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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