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머리 제이슨 Jan 02. 2022

돌이킬 수 없는 것

원래부터 주류인 것을 싫어했다. 너무 유행인 것, 모두가 다 추종하는 것은 왠지 피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천만 관객 영화가 20개 조금 안되는데, 나중에 확인해 보니 그중 본 게 두 개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가 원해서가 아니라 가족끼리 같이 영화 보러 갔을 때 마지못해 함께 본 것이었다. (둘 중 하나는 매우 재미있었고, 다른 하나는 쓰레기였다)


모두가 본 영화는 보지 않는다. 줄 서는 음식점은 가지 않는다. 유행하는 스타일 옷은 입지 않는다. 케이팝은 듣지 않는다. 역발상 투자를 지향하기 때문에 이런 성향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어쩌면 타고난 성격 때문에 역발상 투자를 지향하는 것일 수도. 


20-30대에는 그런 성향에 대해 어쭙잖은 우월감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에 있었다. 어느 순간, 시간의 임계점을 지나고 말았다. 어느덧 나는 유행을 거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유행에 뒤쳐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다. 


어디서 그 사실을 깨달았냐 하면, 바로 이모지emoji였다. 


언제부터인지 밀레니얼과 그 이후 세대는 국적을 불문하고 이모지를 남발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이모지만으로 문장을 만드는 언어 파괴자도 있고, 더한 것은 그것을 정확히 알아듣는 동료 언어 파괴자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해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이해하면서 싫어하는 것과 이해하지 못하면서 싫어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이제 나는 늙었다. 


원래 이모지는 일본에서 시작된 그림문자 입력 체계다. 그런데 아이폰 3G가 일본에 진출할 때 처음 탑재되었고, 그게 역수출이 되며 이모지는 글로벌 사용자들의 그림문자가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아이폰에 이모지를 탑재한 배경이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의 강력한 요청이 배경이었다고 한다. 손정의는 그렇게 대머리면서 그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사나이였다. 


똑같은 대머리지만, 역시 내 쪽에선 도저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모지를 쓰는 걸 시도해 본 적도 있다. 하지만 뭔가 어려웠다. 우주 비행사가 지구에 귀환해 처음 땅을 밟을 때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처럼, 모든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역시 안 되는 게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출강하는 대학교 강의가 있다. 거기에 있는 1학년 과대 학생이 카톡으로 연락이 왔었다. 키 크고 잘생긴 친구다. 강의 내용 관련 질문을 했고, 적당히 대답을 해 주었다. 내 답변을 확인한 후, 학생은 "넵!" 하고 짧은 답장을 남겼다. 


넵!


느낌표는 한 개. 이모지는 없었다. 나도 이 짧은 답변의 맥락을 정확히 알고 있다. 넵의 ㅂ 받침과 느낌표 조합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회적 친근함의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느낌표 한 개는 정확한 경계선을 긋는다. 이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는 명확한 제스처다. 왜 모르겠는가? 나 역시 수많은 부장님들께 똑같은 '넵!' 답장을 날렸는데. 


역시 그에게 나는 멀고 먼 교수 나부랭이일 뿐인가? 나름 젊은 선생이라고, 과대랑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나의 착각이었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유행에 뒤쳐진 늙은이가 될 수는 없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용기를 내어 다음 답장을 보냈다. 

...


조심스레 과대의 반응을 살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역시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이모지나 스티커 투척은 여전히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작가의 이전글 맥도날드에 까였을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