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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Nov 28. 2023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

정말?

대히트작을 집필한 드라마 작가님의 에세이를 읽었다. 1992년에 방영된 그 드라마를 보며 ost를 열심히 따라 부르던 어린이는 어른이 되어서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자신이 불행한 여자가 돼서 기쁘다는 듯이 그녀의 책을 꺼내 들었다.  

   

알록달록한 겉표지에 ‘평생 말빨, 글빨로 돈 벌며 살아온 센 언니의 39금 연애 에세이’라고 적힌 문구를 보면서... 그래 잠시 망설였지만, 평소 나는 말빨, 글빨 좋은 언니들을 좋아했으므로 이 센 언니의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드라마 극본은커녕 드라마 작가가 쓴 에세이도 처음 읽어 보는 주제에 나는 감히 ‘드라마 작가의 글이란 이런 건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뻔뻔한 사람들이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대사를 글로 읽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 느끼한 문장을 태연히 연기해서 담백하게 만들어 버리는 배우들도 그렇지만 이미 그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야 하는 드라마 작가들도 대단히 뻔뻔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느끼함을 이겨내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진지함이 오글거림으로 폄하되고 꼰대로 몰릴까 봐 조언도 삼가게 되는 요즘이다. 나는 책을 읽다가 조금만 느끼해져도 견딜 수 없어한다. 내게 느끼한 글은 곧, 구린 글이라는 공식이 있었다. 하지만 느끼하다는 건 대단한 자기 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구나.      


그러나 취향은.. 나의 취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 이질감을 견디며 그냥 읽지 말자. 아니야 좀 더 읽어보자를 반복했다. 그녀의 글은 느끼하다기보단 매웠지만 내게는 맛있게 매운맛은 아니었던 거다. 그러나 끝까지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시 말빨, 글빨 좋은 언니에게는 아쌀한 한 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랭 드 보통은 독신에는 외로움이 있고 결혼엔 숨 막힘과 노여움, 좌절이 따른다고 말했다. 그녀는 노여움을 견디지 않기로 결정하고, 다시 외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이혼이며 어떤 이유든 노여움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 결혼이기에 모든 결혼은 불행하다고 주장한다. 나는 박수를 쳤다.      


결혼 생활 내내 나는 노여웠던 것이다. 언니는 역시 알고 있었다. 사람이 노여움 때문에 짐승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이었던 사람은 내가 자신한테 하듯이 행동하면 살인마도 무찌를 수 있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 짐승이 아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외롭다. 그렇지만 둘이었을 때의 외로움보다는 견딜 만하다. 아니, 견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제 외로움은 나와 한 몸이 된 것만 같아서 외롭다는 말은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타고난 응석받이라 동생보단 언니를 대하는 것이 늘 편했다. 하지만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에게 오빠라고 말하지 않듯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도 언니라는 호칭을 쓰진 않는다. 관계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나이 하나로 친밀감을 가장하는 그 두리뭉실한 호칭이 거북했다. 나는 성별 불문하고 선배라는 호칭을 선호한다.(남편에게도 선배라는 호칭을 써왔다.)


하지만 나이가 적건 많건 간에 멋진 여자들을 발견하면 아무렇지도 않게 마음속으로 그들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그들과 친해지고 싶다. 그러나 친해지고 싶을 뿐이지 실제로 친해지기를 원하지는 않는다.(물론, 그들은 나의 존재를 모르기 때문에 친해질 수도 없다.)    

 

나는 친해지고 싶지만 실제로 친해지기를 원하지 않는 이 언니의 말을 믿기로 했다. 눈을 씻고 봐도 행복한 여자는 글을 쓰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의 말을, 그래서 불행한 여자가 글을 쓰면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그 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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