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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Feb 27. 2024

놀고먹는 나도 괴롭다.

그래서 그렇다. 

아직은 2월, 웅크린 사람들이 조금씩 펴지는 게 보인다. 마구잡이로 잘린 가지에서 매화꽃이 만개했고 양지바른 곳의 벚나무도 개화를 시작했다. 그런 곳에 있으면 누구라도 지금이 개화의 적기라고 착각할지 모른다. 그렇다고 양지바른 곳의 벚꽃이 모두 저와 같이 일찍 개화하지는 않으니 역시 성질이 급해야 가능한 일일지도. 막무가내로 돌진해서 정신 못 차리는 거 나도 참 좋아하는데 말이다.      


또 만났다. 그들은 보통 2인 1조로 다니면서 근처에 서점이 어딨는지 물어보고 갑자기 진로를 알려주는데 작년에 이어 3번이나 그들의 타깃이 되었다. 이번에 만난 사이비 신도는 혼자였다. 서점의 행방을 묻는 그를 향해 고개를 내저으며 재빠르게 지나쳤지만, 그는 사람들이 바글대는 거리에서 에어팟을 뚫을 만큼의 큰 목소리로 애타게 나를 불러댔다. 저기요. 잠시만요. 저기요.      


귀에서 에어팟을 빼고 뒤돌아보았다. 어김없이 진로를 제시한다. 나는 빡쳤을 때 활짝 웃는 전략을 여기서 써먹어 보기로 한다. 그와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눈썹을 팔자로 올리고 눈을 반달로 구부리고 최대한 활짝 웃으며 고개를 옆으로 갸웃해 보았다. 청년의 동공이 흔들린다. 아무 말이라도 지껄여야 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다. 그는 그 길로 재빠르게 사라졌다.      


사이비 신도들은 왜 자꾸만 나를 불러 세우는 것인가. 내가 호락호락하게 생긴 것인가.(하지만 살면서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아니면 누가 봐도 진로를 고민하는 백수상인가. 아니다. 이건 지극히 자기애적인 생각이다. 아마도 내가 혼자라서 그럴 확률이 높을 것이다.      


왜 혼자 다니는 건지 궁금했다. 2인 1조로 다니면 수익을 나눠야 하나. 건당 얼마를 받을까. 그런 건 없고 오로지 굳은 믿음 하나로 저러는 건가. 그렇다면 그 믿음을 갖게 한 그의 괴로움은 무엇이었을까. 그 괴로움이 사라지긴 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나는 안 그래도 늦가을의 다람쥐처럼 갖가지 문제를 힘겹게 껴안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써 놓은 문구를 보았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되어도 괴로움을 안고 사는 모양이지만 늦가을의 다람쥐에 빗댈 수 있는 저 여유로움은 어떻게 하면 가질 수 있는지. 어쨌든 늦가을의 다람쥐들이 도토리를 많이 저장할 수 있게 되길 바라며 웃을 수밖에.     


주로 이런 쓸데없는 예측과 상상을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흐르다 활짝 웃고 잔뜩 찡그린다. 알 수 없는 것을 알고 싶어 하며 알아내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또 알고 싶어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로 하루를 마감한다. 한마디로 놀고먹고 있다는 말이다.      


놀고먹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나도 충분히 괴롭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것들은 흐른다. 모든 일이 그런 측면이 있다는 건 참으로 놀랍다. 물 흐르듯 살게 해달라고 알지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빌고 또 빌었는데 어느새 흘러가며 살고 있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평온일 거라 예상했지만 단지 다른 행복과 다른 괴로움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 길에서 망상에 빠져 웃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면 저 여자는 행복한가 싶겠지. 세상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로 굴러간다. 우리는 공감하는 것을 이해로 착각한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 이제는 사무치지 않고 덤덤하다. 어쩔 수 없지. 다 그런 거지 뭐.      


괴로움이 지나고 나면 행복이 오리라는 바람을 취하면서도 행복 옆에 숨 쉬듯 붙어있는 괴로움은 취하려 하지 않는다. 행복에는 오로지 행복만이 있을 거라는 착각. 우리는 그 완벽한 착각을 바라기에 옆에 붙어있는 괴로움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들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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