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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Oct 24. 2024

사람들이 집에 왔다.

3화

 집을 보러 온 이들은 60대 부부로 보였다. 남자의 손에 들여있는 이곳의 유명한 빵집 종이가방을 보자 이 집이 관광지처럼 느껴졌다. 식탁에 하릴없이 앉아 오늘의 운세 따위를 읽는 나는 이 집과는 무관한 사람 같았고, 집 안 구석구석을 인도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마땅히 이 집의 주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호기심의 눈빛을 숨기지 않던 남자에 반해 여자는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로 작정한 듯 무심한 얼굴로 집 안 곳곳을 살폈다. J와 함께 신혼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이 생각이 났다. 좁고 오래된 아파트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콧속으로 파고들던 지극히 개인적인 타인의 냄새와 믿을 수 없을 만큼 너저븐하게 펼쳐진 살림살이들. 가스레인지 위에 말라비틀어진 음식물의 잔해와 타일 벽에 낀 누런 기름때. 피곤함과 당혹스러움이 뒤범벅된 채로 아이를 달래고 있던 여자의 표정이. 

 J는 집을 보고 나오는 길에 울음이 터진 나를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렇게 울면 내 마음이 어떻겠냐? 여기보다 더 허름한데도 많아. 

-... 그래서 우는 거 아니야.

-그럼 뭔데? 

-엄마가 생각나서 그랬어. 

-장모님?

-어. 엄마도 이랬겠구나. 아니 엄마는 단칸방에서 저렇게 살았겠구나 싶어서.

-처음부터 좋은 집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아니... 내 말은... 

-너도 참.. 세상물정 모른다.    

  

 그 여자를 보며 남편 하나만 믿고 따라온 타지에서 언니와 나를 돌보았을 앳된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었다. 가슴이 갑갑할 때면 언니의 작은 손을 움켜쥐고 포대기로 나를 엎은 채로 집 앞의 공원을 수도 없이 걸었노라고. 갓난쟁이의 뽀얀 얼굴을 새까맣게 그을리게 할 만큼 그땐 그렇게 아무것도 몰랐다고 말하던 늙어버린 엄마의 얼굴도. 지금도 J는 세상물정 모르는 내가 낡고 더러운 집이 싫어서 울었던 걸로 기억하겠지.

 다음 날, 집을 보러 온 이들은 조그만 남자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였다. 짙은 카키 컬러의 바버 왁스 재킷을 걸친 남자는 집 안을 들어서고 나가는 순간까지 감탄사를 내뱉었다. 집 보러 다닐 때의 주의사항 같은 건 확인하지 않는 어수룩한 면모를 가진 인상이었지만 일부러 그것을 염두 한 행동일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온 중개인은 내게 알은체를 한다.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8년 전에 그녀를 통해 이 집을 계약했었다. J에게 자신의 아들이 사장님처럼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기억났다. 어떻게든 계약을 성사시키겠다는 아부성 발언으로 치부하기엔 그녀의 눈빛에 진심이 느껴져서 삐져나오는 실소를 참기가 힘들었었다. 몇 번 봤다고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추측과 판단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이런 오해들로 세상이 굴러간다는 사실이 어처구니없어 웃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들이 성매매를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사 먹었던 것처럼 말하는 남자가 되길 원해? 집을 보러 온 젊은 남자가 어리숙해 보이긴 하지만 어리숙함을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추측은 분명히 틀렸을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젊은 여자는 집안 여기저기를 꼼꼼히 살피면서 장점보다는 단점에 대해 지적했다. 똑똑하다. 이 집은 넓은 평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수납장이 적고 새시 교체가 되어있지 않다. 중개인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이 8년 전과 다를 바 없이 어쩜 집이 이렇게 깨끗하냐고 마치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이 난리 통에 J는 술 냄새로 찌든 방문을 열고 부스스한 차림 그대로 밖을 나가버린다. 그들이 들이닥치기 2시간 전 부동산에서 올 거라고 미리 연락을 해두었지만 나는 상관할 바 아니라는 듯이. 


-그런데 이렇게 좋은 집을 두고 어딜 가려고요?     


 중개인의 말에 말없이 웃었다. 침대 한가운데에 인형이 보란 듯이 베개를 베고 누워있는 안방과 술 냄새로 찌든 방에서 말없이 나가는 J를 보면 모르진 않았을 거다. 내가 왜 이 집을 두고 떠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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