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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비 Oct 24. 2024

한 집에서 따로 산다는 것

5화

 같은 집에 살면서 J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소리로 J라는 존재를 가늠할 뿐이다. 무언가를 씻어내는 물줄기 소리에 반사적으로 침실 벽에 달린 보일러 조절기에 빨간 램프가 켜있는지를 확인한다. 내가 요란스럽게 바스락거리며 이불을 무릎에 끼울 즈음에 J는 욕실에서 나와 드레스룸에서 헤어드라이어로 젖은 머리를 말리고 있다. 헤어드라이어의 윙윙대는 소음이 끝나면 붙박이장의 문이 열리는 소리와 잠깐의 정적, 옷걸이가 옆으로 착착 넘어가는 소리, 옷이 떨어져 나오면서 옷걸이들이 딱딱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뒤이어 붙박이장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 J는 슬리퍼를 바닥에 질질 끌면서 주방 쪽으로 걸어간다. 싱크대 위에 올려둔 영양제 뚜껑을 하나씩 연다. 통 속에서 달그락 알약이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종합비타민, 오메가 3, 스피룰리나, 저분자 피시 콜라겐, 히알루론산, 프로바이오틱스, 홍삼을 입에 털어놓고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어 그대로 함께 삼킨다. 그릇 수납장 위에 올려둔 라탄 바구니에서 견과류 한 봉지를 챙겨서 현관문으로 걸어가 신발장 문을 열고 신발을 꺼낸다. 신발 바닥이 바닥 타일에 부딪혀 맑고 차갑고 단단한 소리를 낸다. 현관문 손잡이가 덜컹거리며 아래로 내려가고 현관문이 거칠게 바람이 가르는 통에 집 안의 아귀가 맞지 않은 오래된 문들이 덜컹거린다. 현관문이 닫히고 띠리릭 도어록 잠금 소리가 뒤따르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한다. 

 화장실 문을 열고 배설한다. 어렸을 때 바닥에 기다란 판자 두 개를 끼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었다. 자신의 몸에서 나온 배설물도 마주하기 싫은데 타인의 배설물까지, 세월이 지나 휴지와 함께 켜켜이 쌓인 그 질척하고도 단단한 덩어리들과 그곳에 태연하게 자리 잡은 구더기 떼의 광경은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었다. 배설할 때마다 판자가 부러지는 상상을 했다. 더 아찔한 상상은 자신의 두 다리가 판자가 아닌 곳을 태연히 내딛는 것이었다. 무사하고도 재빠르게 배설하고 나와도 배설의 냄새는 고스란히 온몸에 스며들었고 그것이 가난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넌 어쩔 셈이야?     


1년 만에 받은 메시지에서 J는 여전한 말투로 물어보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혼이 너의 최선의 선택이냐고 묻는 나의 말에 J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나는 그냥 정리하고 싶은데? 

-그래. 그러자.           


 토요일 오전 11시 30분에 집을 나서면 매번 같은 산책로에서 같은 사람을 만난다. 그이는 왼쪽 어깨를 아래로 떨어트리고 왼쪽 팔을 유난히 거칠게 흔들며 곧 쓰러질 것 같은 특유의 질질 끄는 걸음걸이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거나 가끔 웃기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어김없이 그 사람을 만난다. 그건 그가 3시간이 넘도록 같은 산책로를 걷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토요일마다 도서관을 가는 나와 끝도 없이 같은 자리를 걷고 걷는 그 사람.      

 재래식 화장실을 써야 했던 생활은 6년에 불과했지만, 그 6년이 평생을 따라다녔다. 꿈속에 등장하는 집은 언제나 그곳이었고 무슨 짓을 해도 그곳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아 늘 불안했다. J와 헤어지는 것보다 그 지독한 냄새가 더 두려웠다. 끝까지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평일에도 같은 자리를 끝도 없이 걷고 또 걷는 새까맣게 그을린 그이의 얼굴을 보자 붙들고 있던 그 마음이 아무렇지도 않게 투두둑 흘러내렸다.  

     

-하아... 그렇게 할 거면 그냥 없던 일로 하던가?

-....

-난 그냥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아. 

-....

-아니면, 이혼하고 같은 집에서 살아도 되잖아?

-돈 문제는 내가 다시 생각해 볼게. 2개월 안에 마무리 짓자.    

 

 J에게 나는 반품하기엔 애매하고 귀찮은 티셔츠 같은 것이었구나. 입맛에 안 맞는 필링이 가득 찬 초콜릿 같은 거 말이다. 초콜릿은 먹고 싶은데 필링이 싫어서 망설이는. 이건 J가 20년 동안 수없이 반복했던 일이었지만 가슴이 달아오르고 손이 떨렸다. 온 힘을 다해 J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20년 동안 붙잡고 또 붙잡았다. 이번에도 역시 이혼할 생각은 없었고 붙잡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단지 J가 새벽에 벌컥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잠을 깨기 싫었고 바닥을 질질 끌면서 걷는 실내화 소리가 싫었다. 요란스럽게 영양제를 챙겨 먹는 소리가 역겨웠고 문을 열었을 때 콧속을 파고드는 J의 체취가 섞인 향수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J가 만들어내는 모든 소리와 냄새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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