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숨 쉴 작은 안식처가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카페 구석 자리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잠긴 화장실 안일 수도 있다.
미혼이라면 결혼이라는 울타리가, 혹은 직장이 그런 피난처가 될 수 있고, 가정을 이룬 이라면 친정이 마지막 숨구멍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그게 허락되지 않았다.
“시댁귀신.”
그 말만 들어도 등줄기가 싸해진다.
언니가 아직 걷지도 못하는 어린 딸을 업고 비가 쏟아지던 날, 택시를 타고 친정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 형부의 폭력과 시어머니와의 끝없는 갈등에 지쳐, 살기 위해 도망쳐 온 날이었다. 우산도 쓰지 못해 뛰쳐나온 젖은 머리, 잔숨을 고르고, 몸을 떨며 아버지를 찾아왔지만, 아버지는 냉정했다.
“죽어도 시댁귀신이 되어야 한다.”
그 말과 함께 문은 굳게 닫혔다.
언니는 결국 울면서 지옥 같은 시댁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드라마 속 며느리들은 싸운 날이면 캐리어를 들고 친정으로 향한다. 문을 열어주는 엄마, 비록 딸이 잘못했어도 맛있는 밥, 그리고 등을 토닥이며 건네는 위로의 대화들
그런 장면들은 우리 가족에겐 TV 속에서나 가능한 환상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알았다. 우리 집은 안식처가 아니었다. 여자는 견디는 존재였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그 울타리는 벗어날 수 없는 사슬이었다. 나는 그 사슬을 끊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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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기다리며 글을 씁니다. 멈춘듯, 흐르지 않는 어둠과 함께 ... 시간에 대한 후회, 반복되는 상처로 인해 글은 저의 치료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