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적 꿈이 없었다. 그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무엇을 잘하는지 들어본적 없고,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들어본적 없기에...
빨리 중학생이 되고 싶었고, 빨리 고등학생이 되고 싶었고, 그래서 빨리 졸업을 해서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다. 학교는 인문계를 가지 않았고, 상업계열에 입학하였다. 주판을 다루고, 부기를 배우며, 그때까지만 해도 이런 과목에 관심이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돈에 대해 알지 못했던 그 시기에는 나에겐 어렵고, 나의 꿈은 학업에 대한 흥미를 가지기 보다 졸업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아버지는 돈을 만지는 은행원, 경리사원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너무나 소심한 성격에 돈달라는 소리도 하지 못한다고, 상업계열에 입학하였지만, 졸업후의 나의 일은 다른 일이였다.
무역회사의 악세사리 디자인하는 개발부, 문구회사의 품질검사원, 철강회사의 자재담당 사무원등, 돈하고는 거리가 먼 직업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러한 부서들도 돈이 많은 회사들이고, 시간이 지나면 취업의 문은 좁아지고, 특별한 기술도 없는 나에겐 알바자리도 마땅치 않았다.
고향을 떠나 동생과 자취하고 있었는데, 형부가 급히 고향에 경리사원이 급하다고 연락이 왔다. 집엔 가고 싶지 않았는데, 자취하면서 나가는 생활비가 걱정되기도 했고, 집에서 출퇴근하는 거라 면접을 보고 자취방에서 짐을 빼서 부랴부랴 고향으로 향했다.
경리일은 너무나 생소했다. 그곳에선 세금신고부터 장부기록까지 세무사사무실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체결산을 하는 곳이였다. 과장님이 회계사무실 출신이라 그러했다.
갑근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갑근세 신고를 하며, 똑같아보이는 세금계산서 상호를 보고 같은 업체로 합체해놨다. 과장님한테 꾸지람도 듣곤 했는데...
회계에 대한 생소한 지식, 계정과목에 대한 무지, 전임자도 없었고, 그렇지만 전임자가 일을 잘해서, 전임자가 작성해놓은 전표를 하나하나 뜯어봤다. 전표앞에는 기록이 되었고, 뒷면에는 영수증이 첨부되었다.
난 영수증과 계정과목을 대조해가며 계정과목을 공부했다. 경리일을 시작한 때는 97년인데 그 시절에는 인터넷도 없었고, 회계서적도 마땅치 않았고, 지금처럼 학원도많지 않았다.
영수증을 보니, 기업에겐 매번 같은 거래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해에는 직접 결산을 했다. 세무조정은 다른 세무사사무실에서 했는데, 사무장님이 회계처리 틀린것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일을 하다보니 나의 적성을 찾은 것 같았다. 숫자를 맞추는 즐거움! 나뿐만 아니라 과장님께서도 적성에 맞는것 같다고 하셨다.
경리, 세무일은 회사를 옮겨도 쉽게 구할수 있고, 어느 회사나 경리 없는 회사는 없다고 하셨다.
일해보니, 숫자는 정직하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투명하고 정직함... 거기에 세법이라는 변하는 않는 울타리는 나에게 정말 딱이였다.
그 이후로 회계공부를 시작했다. 서적이 많지 않았다. 회계서적이라곤 대학교에서 사용하는 전공서적이 전부였고, 문제풀이에 해답도 없었다. 그렇지만 경리일만큼은 쉽게 그만두지 않고 오래다녔다.
공부를 멀리 하겠다는 생각도 잠시, 난 이일과 관련된 전공을 다시 시작하려고 했고, 집에서 독립하는 것이 꿈이라, 야간대학에 합격한 후 집에서 독립했다.
내가 하던 일과, 관련된 경영학과에 입학하였다. 남들은 어렵다고 하지만, 난 10년 지나 대학에 들어가서 수업이 어렵지 않았고, 1학년이지만 3학년 수업이나 4학년 회계감사 수업도 들었는데, 학점은 더 좋았다.
대학은 나에게 신세계였다. 자존감 낮고, 의사결정 할 줄 모르고, 항상 똑똑한 언니에게만 묻던 내게, 나를 평가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는, 기대이상으로 높은 학점을 받았다.
그저, 출석에 충실하고, 과제물 제때 제출하며, 약간의 공부만 했을 뿐인데 말이다.
좋아하는 일과, 할수 있는 일은 같은줄 알았다. 이것은 앞으로 해야할 이야기이다.
훈련된 일이 어쩌면 나에게 할수 있는 자신감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실무와 학교의 이론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의 이야기는 자주 할 것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십여년이 지난후 알게 되었고,난 그 일과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20년이란 시간이 지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니, 그건 20년전에 흥미를 느꼈던 경리, 세무일이 아니라 글쓰는 일이다. 이 글쓰는 것 또한, 처음부터 좋은 것은 아니였고, 사회생활로 인한 자주 일어나던 상처를 일기로 남겼던 것이 지금의 결과가 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