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37년생 아버지는 가계부를 쓰셨다.

기록의 기술... 기록의 중요성

by 신수현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3년 전까지 가계부를 쓰셨다. 가계부나 현금출납부처럼 정형화된 형식은 아니었지만, 일반 보조장부(줄이 그어진 노트)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셨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했고, 세금과 회계 업무를 10년 넘게 해 왔기에 장부의 형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장부를 보며 기록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장부는 복식부기라기보다는 단식부기에 가까웠다. '셋째 아들 암 수술비 800만 원 지급' 같은 기록이 남아 있었고, 장부에는 지급만 있었을 뿐, 되돌아온 돈은 많지 않았다. 또한, 매월 고정적으로 나가는 건강보험료와 국민연금은 12개의 세로줄을 그어 기재하셨다. 특히 건강보험료가 유독 많이 나오는 달이면 공단에 문의도 하셨다.


아버지가 남기신 또 하나의 장부는 경조금, 축의금, 부의금, 그리고 친척들이 방문하며 놓고 간 용돈에 대한 기록이었다. 축의금의 경우 아버지가 낸 돈과 받은 돈을 비교하며, 방문하지 못해 받지 못한 돈이나, 냈던 돈보다 적게 들어온 축의금도 따로 적어두셨다. 장부와 축의금을 비교하며 아버지는 속상한 말투로 "나는 큰딸 결혼식에 10만 원 했는데, 이 사람은 내 딸 결혼식에 5만 원만 했어!"라고...


회계와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은 명절이나 생신 때 형제나 친척이 놓고 간 용돈을 기록한 부분이었다. 고정적인 수입은 아니었지만, 작년보다 덜 들어오거나, 용돈을 놓고만 간 친척이 있으면 그들의 경제적 상황을 추측하셨다. 실직한 것은 아닌지, 이직 후 월급이 줄어든 것은 아닌지, 새로운 가족이 생겨 부담이 커진 것은 아닌지 고민하셨다.


아버지는 82세에 돌아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그 장부를 들춰볼 기회가 없었다. 나무로 된 낡은 앉은뱅이책상 서랍 안, 아버지의 장부를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야 열어보았다. 그렇게 꼼꼼하시던 아버지도 돌아가실 즈음에는 친척들이 봉투에 넣어둔 용돈을 다 펼쳐보지도, 기록하지도 못한 채 장부 곳곳에 봉투를 끼워두셨다.

아버지가 누워 계시기 전까지는 모든 기록이 꼼꼼하게 남아 있었지만, 마지막 3년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버지의 장부를 이어 쓰는 자녀는 없었고, 아버지만큼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렇게 철저하시던 아버지도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재산을 정리하지 못하셨다. 생전에는 장남에게만 준다고 큰소리치셨고, 딸들에게는 유산이 없다고 하셨지만, 결국 그 말씀 그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이제 가계부와 다이어리는 어플이나 노트북을 통해 기록이 가능하다. 카드나 통장 내역을 연동하면 자동 입력되고, 통계까지 분석해 준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처럼 종이가계부를 좋아한다. 그리고 매년 새해가 되기 전, 종이 다이어리를 구입한다. 매일 기록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작심삼일로 끝나기 쉽다. 그럼에도 나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다이어리를 펼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나? 왜 이런 감정을 느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간은 그런 것이다. 아버지처럼 기억이 희미해지고,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아 기록이 멈출 때, 그 순간이 바로 한 사람의 생이 촛불처럼 스러지는 순간인지도 모른다.


나는 기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노트북에 생각을 기록하고 있지만, 종이에 쓰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다이어리와 형형색색의 펜을 구입했다.

기록은 추억을 남긴다. 그리고 그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고, 잊힌 기억을 감동으로 되살린다. 때로는 내가 쓴 글인데도, 내가 나에게 감동을 받는다.


누군가 기록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기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경영학이나 회계를 모르셨지만,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 아버지도 장부를 펼치며, 더 도와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1화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