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그만두면 새로운 직장이 곧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와 달랐다. 예상보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 회사보다 더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회사나 다 비슷할 것’이라는 체념이 찾아왔다.
나는 이직을 결심하기보다는 자존심과 불합리한 대우로 인해 회사를 떠난 경우가 더 많았다. 면접을 보고 합격 통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는 경우가 잦았다. 같은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망설이다가 이로 인해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불안감이 커졌다.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는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다. 운전 중에도 마찬가지였다. 주차장에서 긁히고, 삼거리에서 접촉 사고가 발생하며, 깜빡이만 켜고 갑자기 끼어드는 무모한 운전자를 만나는 일도 있었다. 사고는 갑작스럽게 발생하지만, 대부분은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을 때 일어난다. 회사 선택도 이와 유사하다. 확신 없이 내린 결정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하고, 반대로 불가능할 것 같던 일이 쉽게 해결되기도 한다.
운전 중 경로를 이탈하는 경우도 있다. 경로를 이탈했다고 범법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놓쳐 엉뚱한 길로 들어설 때도 있지만, 금방 원래 길로 돌아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경로를 이탈한 채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직진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요한 순간에는 반드시 멈춰 서야 한다.
1. 아무 데나 가면 어때? 어디든 다 똑같아
여러 번의 실패는 자존감을 바닥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 ‘나를 받아주는 회사라면 어디든 열심히 할 수 있다’라고 다짐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들어간 회사는 한두 달은 견딜 수 있지만 결국 후회하게 된다. 마음이 지쳐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제대로 보이지 않으며, 삐딱한 시선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과도한 업무도 감수할 만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아무 데나 가면 어때’라는 생각이 든다면, 지금보다 더 힘을 내어 내가 원하는 조건을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회사는 반드시 존재한다.
2. 세무사가 멘털이 나갔다
2월과 3월은 세무업계에서 가장 바쁜 시기이다. "3월에 출산 예정이면 차라리 임신을 미루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다. 나는 2월에 나이 든 부장과의 마찰로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하필 그 달에 이사를 해야 했고, 3월부터는 일을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웠다. 다행히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할 수 있었고, 3월에는 분당의 한 세무사 사무실에 취업했다. 새로운 직장에는 원래 네 명의 직원이 있었으나, 두 명의 경력자가 3월 전에 모두 퇴사하고 나와 다른 신입 한 명만 남았다. 세무사님은 공황장애가 올 것 같다며 힘들어했다. 바쁜 3월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3월을 견뎌냈다고 해서 대체 인력을 뽑아주지는 않았다. ‘한 번 해냈으니 다음에도 잘하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만 있을 뿐이었다.
3. 계속되는 질병, 그리고 지각
일이 많아도 에너지가 넘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야근도 힘들지 않고, 신고 기간이 다가오면 자발적으로 일찍 출근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회사에서는 이상하게도 몸이 지친다. 업무량이 많지 않아도 피곤하고, 지각도 잦아진다. 지각은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처음부터 감기나 몸살 등으로 자주 아프다면 그 회사는 나와 맞지 않는 곳이다. 내 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건강하게 다닐 수 없는 회사라면 과감하게 떠나야 한다.
4. 세무사보다 권력을 쥔 사무장, 팀장
어떤 사무실에서는 세무사보다 사무장이나 팀장이 더 큰 권력을 쥐고 있다. 누가 힘을 가지고 있느냐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실무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이다. 그러나 세무사보다 힘을 가진 사무장이나 팀장은 자기 방식대로 업무를 가르친다. 신고서철을 만드는 순서, 라벨을 붙이는 방식, 적요 작성법 등을 일일이 정해두고, 기준에 맞지 않으면 수정하게 한다. 세금 신고와는 무관한 부수적인 업무로 직원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특히 오픈 멤버인 경우, 처음에는 신입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이 배운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후배들에게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운전은 하지만 자전거는 타지 못한다. 어릴 때 몇 번 시도했지만 자주 넘어졌고, 결국 포기했다. 왜 넘어졌을까? 앞으로 가는 것에만 집중하고, 중심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타다가 비틀거리면 브레이크를 잡으면 된다. 그러면 멈출 수 있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 회사 선택도 마찬가지이다. 이 회사가 나의 열정을 비틀거리게 하는 곳인지, 아니면 더 큰 불꽃을 지펴줄 곳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신이 건강한 상태에서 시간을 갖고 회사를 파악하는 것이다. 시간에 쫓겨 선택하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
내가 지나온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많을 것이다. 순탄하지 않는다고 나의 삶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실수를 많이 한다는 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많이 겪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는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잠시 멈춰 서야 방향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내 삶의 핸들은 내가 쥐고 있다. 경로를 이탈했더라도 다시 돌아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나를 잃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