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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만에 해고

나에겐 1일이 아니라 그 이상의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by 신수현 Mar 05. 2025

하루 만에 해고

     

지금 돌이켜보면, 단 하루 만에 해고당했지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도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회사에겐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겠지만, 구직자에게는 그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과 해고 후 다시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시간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미금역의 뚱뚱한 세무사 사무실에서의 하루  

   

이곳은 내가 이전 직장을 떠나기 전 면접을 봤던 곳이다. 이력서만 보는 게 아니라 면접도 진행했고, 출근은 여유를 두고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첫 출근 날, 점심시간에는 고기 회식이 있었지만, 아직 직급이 부여되지 않는 나에게, 나보다 어린 팀장은 나에게 ‘XX 씨’라고 불렀다. 직급이 없으니 그런 건 이해하지만, 왠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점심 후 사무실로 돌아갔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직원들은 각자 사무실로 가는 듯했지만, 나는 계단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사무실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반나절 만에 세무사가 나를 부르더니 자기 회사와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더 황당했다. “능력이 있으니 어디를 가든 좋은 회사를 만날 거예요.” 마치 외계어를 듣는 듯한 기분이었다.     


사실 나도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부가세 신고 자료도 없이 결산하라는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세무사 사무실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다. 현재는 홈택스를 통해 세무대리인 수임등록을 해야 하고, 기존 세무사가 해임을 해줘야 가능하지만, 10년 전만 해도 기존 수임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료를 넘겨받지 못한 경우, 세무서에서 부가세 신고 자료를 가져와 합계만 등록하여 재무제표를 만들곤 했다. 나도 좀 더 유연하게 대응했어야 했을까? 하지만 자료가 없으면 결산이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고수했고, 결국 하루 만에 해고되었다.     


회계법인에서의 하루, 힘 있는 사무장    

 

이곳에서는 퇴근 후 회계사와 면접을 봤다. 그러나 면접 당일, 사무실이 1층인 줄 알고 한 시간 넘게 기다렸다. 아무도 말해 주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알고 보니 출판사와 회계사가 함께 있는 건물이었고, 사무실은 다른 층에 있었다.     


겨우 사무실을 찾았지만, 회계사는 출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오후에 출근한다고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출근한 첫날, 나를 위한 인수인계는 없었다. 책상에는 계산기도, 파일철도, 심지어 볼펜 하나도 없었다. 대체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오후가 되자 회계사가 돌아왔고,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사무장이 나타나더니 “나는 당신과 면접을 보지 않았다. 그래서 같이 일할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나는 순간 멍해졌다. 사무장은 대표도 아니고, 면접관도 아니었는데, 그의 말 한마디에 나는 하루 만에 해고되었다.     


그날 저녁, 하루치 일당만 입금되었다. 허탈했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경력자로 채용해 놓고, 하루 만에 ‘맞지 않는다’며 내보내고는 “경력이 있으니 다른 곳에 쉽게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만 던지는 곳이 많았다. 하지만 회사가 1일의 시간을 소비했다고 해도, 구직자에게는 이직 준비 시간과 다시 구직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단순한 하루가 아니었다.     


해고 이후의 시간, 비용은 누가 책임지는가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비록 1일 근무였지만 부당해고 구제신청이라도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근로기준법상 해고 예고 없이 하루 만에 근로자를 내보내는 것은 불법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일 근무자의 부당해고를 입증하고, 그 과정에서 정신적·경제적 손해를 보상받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해고 이후의 시간에 대한 보상은 누가 책임져야 할까? 하루 근무를 위해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해고된 후 다시 구직해야 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이는 단순히 하루치 급여의 문제가 아니다. 나 같은 세무대리인 실무자들이 있다면, 해고 이후의 구직활동 비용까지 청구하는 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누가 조직을 움직이는가 

    

세무사 사무실의 대표는 세무사이고, 회계법인의 대표는 회계사지만, 실질적인 힘을 가진 사람은 실장, 사무장, 팀장 같은 실무자들이다. 이들은 대표보다도 많은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더 많은 대화를 나누며 조직을 움직인다. 그래서 실무자가 이직할 때 기존 거래처를 가져가거나, 입사할 때 새로운 거래처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이는 세무사나 회계사가 직접 영업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무사 사무실은 폐쇄적이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하고, 새로운 사람을 경계한다. 자신들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견제하며, 특정한 방식으로 조직을 유지하려 한다. 나는 그 방식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그들이 나를 밀어내야 할 이유가 있었던 걸까?  

   

마지막, 그리고 앞으로의 길    

 

이제는 한 회사에서 오래 일하는 시대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노동권은 보장받아야 한다. 하루 만에 해고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면, 이를 방지할 대책도 필요하지 않을까? 기업이 단순히 ‘경력자니 알아서 잘될 것’이라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구직자가 새로운 기회를 찾기까지의 시간과 비용까지 고려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이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현실이 바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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