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는 여러 차례의 고비가 찾아옵니다. 우리는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되돌아보면 죽음조차도 여러 번의 고비를 넘긴 후에야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른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일을 시작하였고, 그 시기에 큰언니가 결혼하였으며, 작은아버지의 딸도 결혼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경사로 여겨졌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큰 위기의 시작이기도 했습니다.
졸업식을 며칠 앞둔 어느 날, 고모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셨어... 가족을 못 알아봐."
그 말을 듣고도 저는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쓰러지셨다는 말도, 가족을 못 알아본다는 말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병실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즉시 수술을 받거나 입원할 수 없었습니다. 수술 전까지 고모댁에서 대기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퇴근 후 곧장 고모댁으로 향했습니다.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저 어머니와 아버지를 만날 생각뿐이었습니다. 고모댁에 도착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아버지가 누워 계셨습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보며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셋째 딸 왔어요."
그 말에 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저를 바라보셨습니다. 그 순간,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아버지는 의식을 잃은 것도, 완전히 눈을 감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빛은 생기가 없었습니다.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떠올랐습니다. 아버지의 눈에서는 아무런 감정도 읽히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이 환자를 볼 때 가장 먼저 눈동자를 살핀다는 말이 이해되었습니다. 눈빛 하나만으로도 생명의 기운이 남아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슬펐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저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젊을 때는 당연하던 것들이 하나둘씩 어려워집니다. 시력이 저하되고, 청력이 떨어지며, 손에 쥔 물건을 자주 떨어뜨립니다. 쉽게 넘어지고, 몸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부모님처럼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부모님은 자식들을 위해 무엇이든 견디고 버텼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미련 없이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저에게는 부모님처럼 가족을 부양해야 할 책임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병원에 가보면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얼마나 열심히 살았기에 몸이 이렇게 망가졌을까.’
어떤 사람들은 병이 있어도 끝까지 일하다가 쓰러집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만하세요. 이제 좀 쉬세요."
기계도 자주 사용하면 고장이 나고, 반대로 너무 오래 방치하면 녹이 슬어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몸도 다르지 않습니다. 때로는 쉬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강한 분이셨습니다. 가족을 위해 독선적으로 결정을 내리셨고, 모든 것을 주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배우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는 이상하리만큼 소극적이셨습니다. 큰언니가 결혼할 때도 그랬습니다. 형부는 부유하지 않았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신혼여행도 제주도가 아닌 강원도의 설악산으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친척 언니가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단순한 질투였을까요? 아니면 형부를 향한 실망감이었을까요? 병원에서는 아버지의 상태를 보고 가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술도, 입원도 미뤘습니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왜 수술을 시킵니까?"
그 말이 너무도 냉정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그 의사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수술하다 돌아가시더라도, 수술시켜 주세요."
어머니의 간청 끝에 수술이 결정되었고,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모두가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그렇게 빠르게 회복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요? 그때 저는 고3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동생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어린 딸들을 남겨두고 떠날 수 없다는 마음이 아버지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요?
몸은 분명한 신호를 보냅니다.
"이제 그만 쉬어야 해."
하지만 우리는 그 신호를 무시하고 무리하다가, 결국 무너집니다. 누군가 아프다면, 저는 꼭 이렇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