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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용설명서

아버지는 강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감춘 것이다.

by 신수현

아버지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때의 아버지 모습이 점점 더 생생하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제야 아버지가 왜 그렇게 두려운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 떨고 있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조금씩 깨닫고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두려워했던 만큼, 아버지도 가족을 위한 책임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셨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항상 강한 존재였습니다. '강하다'는 표현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집에 계실 때면, 그의 발소리와 문 여는 소리에 늘 긴장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술을 드시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집에 들어오실 때면, 어떤 이야기를 하실지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아버지가 서울로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날이 얼마나 편안한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버지는 큰소리로 가족을 이끌며 책임감을 보여주셨지만, 그 안에는 외로움과 두려움이 함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외아들이었고, 자식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컸습니다. 아버지가 생각하는 '훌륭한 자식'은 의사나 변호사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그런 목표를 심어주었지만, 결국 그런 직업을 가진 형제는 없었습니다. 그럴수록 아버지는 더 큰 부담을 느끼셨고, 그 부담은 술과 큰소리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부담감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여준 강한 모습 뒤에는 언제나 외로움과 두려움이 숨어 있었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보양식을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보양식을 챙겨 드실 때면,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래 살아야 한다"며 몸에 좋은 음식만 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우리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였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무뚝뚝하게 굴거나 큰소리를 치실 때, 저는 아버지가 싫었습니다. 아버지가 빨리 나이를 먹어 약해지기를 바랐던 것 같습니다. 늙은 호랑이처럼 이빨과 발톱, 목소리가 작아지기를 바랐습니다. 그때는 아버지가 두려운 존재였기에 아버지의 존재가 저에게 부담으로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쇠약해지셨을 때, 저는 그분이 그렇게 강하게 살아온 이유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50대 중반에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저는 고3 졸업식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졸업식에 아버지와 엄마는 오지 못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지는 날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저 왔어요’라는 제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아버지의 눈빛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버지가 가망이 없다고 하셨지만,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회복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후 아버지는 예전처럼 강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격도 괴팍해지고, 담배는 끊으셨지만 술은 더 드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저는 그분의 연약함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랐던 것은 그저 오래 살고, 나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저는 많은 후회와 자책에 시달렸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저는 아버지 곁에 있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나 행동이 무엇인지 몰랐고,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너무 미웠습니다.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회는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의 내면은 그토록 강한 모습과는 달리, 연약한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두려워했지만, 그 속에 숨어 있던 외로움과 약함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의 강한 모습만 보았을 때, 저는 그분이 느끼고 있었던 무게와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떠나보낼 때, 저는 그분의 진짜 모습을 놓쳤다는 사실을 자꾸만 되새기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저는 사춘기 시절 길가에서 아버지를 지나쳤던 기억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저를 찔렀습니다. 서울에서 시골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저는 아버지와 떨어져 앉았습니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작은 행동이 얼마나 큰 후회로 남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는 바로 그 아버지의 본모습을 그려보고자 해서입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강한 존재로 저에게 다가왔지만, 그 내면에는 자식들에게 사랑을 주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저도 이제 어른이 되어가면서, 아버지가 느꼈던 그 책임감과 두려움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저는 그분을 떠나보내기 전, 조금 더 다가갔어야 한다는 후회가 남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완성하면, 저의 짐이 가벼워질까요? 그 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면서 제가 놓친 시간들을 돌아보고,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더는 놓치지 않기를, 더는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제 아버지에게 다가갈 수는 없지만, 그 마음을 되새기며 그분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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