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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지키는 파수꾼-대출

공돈인 것 같지만, 경비원에게 지급하는 돈이라고 생각하자

by 신수현

‘대출’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면서도 왠지 꺼려지는 느낌이 든다.

돈을 빌린 사람, 즉 ‘채무자’라는 말에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마치 어딘가 부주의한 사람들,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뉴스에서는 카드론으로 연명하다 파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반복되고, 커뮤니티에는 신용대출로 인생이 꼬인 사람들의 글이 넘쳐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는 다르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나도 대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는 대출(빚)이 하나도 없었다.

시골분이라 대출은 그저 아무 이유 없이 지급되는 돈이며, 대출이 늘어나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늘 대출을 가지고 있는 자녀에겐 걱정이 많으셨다.


누군가는 대출이 ‘신용’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대출을 갚는 사람은 흔치 않으며, 대출을 갚기 위해 대출을 또 실행하고 대출이 늘어나기도 한다.

그마저 담보대출은 그 돈을 갚을 수 없다면 자산을 반납하면 되지만, 담보대출이 아닌 신용대출의 경우는 더욱더 피가 마른다.

내 대출의 시작은 아파트 전세보증금이었다.

4년 전, 나는 7,500만 원을 대출받았다.

아파트 전세보증금의 일부였다.

그 당시 금리는 2.8%로,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정도 이자면 월급쟁이로 살면서 충분히 살 수 있었다.

월 이자는 17만 원 정도이며 그 당시 세무법인에 근무할 당시 월급여가 300만 원 정도여서 성실하게 근무한다면 감당할 수 있었고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는 시점에 회사 근처의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조금만 아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고, 무엇보다도 대출 덕분에 안정적인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안도감이 컸다.

그 돈이 없었다면, 나는 더 멀리, 더 작고 불안정한 곳으로 가야 했을 것이다.

대출은 나에게 ‘살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 주었고, 나는 그 대가로 매달 이자를 지불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갱신 시점이 왔을 때 금리는 5.8%로 올라 있었다.

그 시절 차량을 운용리스에서 금융리스로 전환하려고 1년 전에 투싼 하이브리드를 주문하였는데, 주문하는 시점은 3%였는데 구입하는 시점엔 5%가 넘었다.

자동차나 아파트 담보 대출이율이 모두 올랐다.

“요즘 다 이율이 올랐어요.” 은행 직원이 말했다.

코로나 이후 금리는 급등했고, 나처럼 보증금 대출을 이용한 사람들의 이자 부담도 갑자기 두 배가 되었다.


이제는 월 36만 원이 넘는 이자를 내야 했다. 수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자만 36만 원도 나에겐 부담이었고,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나는 받아들였다. ‘그럴 수 있지’,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어’, 나도 남들처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2025년, 다시 돌아온 갱신 시점에서 현실은 더 냉정했다.

아파트 갱신시점에 대출이 연장되는지 궁금하였는데, 그 당시 연장은 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래도 5.8%라면 열심히 돈을 벌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재계약을 했다.


얼마 전 신용조회를 통해 이율이 8-9% 사이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당연히 연장은 되지만 이율이 올라간다고 했고, 나는 현재 90% 담보이지만, 타 은행은 80%만 담보하니 다른 곳으로 대환을 해도 10%의 보증금은 준비해야 했다.


앞으로 부담해야 할 월 이자는 거의 50만 원에 달한다.

숨이 턱 막히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현재 세무사사무실의 실장으로 근무하게 되었고, 임시로 5월까지 근무하고 6월부터 근무를 정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선 근무해야 하는 게 맞고, 이달 말에 세무사가 마음이 변해 다른 실장을 구한다고 하면 나는 정말 낭패이다.


이율이 오른 이유는 신용등급이 문제였다.

프리랜서로 몇 년을 살면서 꾸준한 수입을 증빙하지 못했고, 간혹 카드값 연체가 있었던 게 치명적이었다.

단지 ‘돈을 잘 쓰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더 높은 금리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딜 가도 7,500만 원을 이 조건으로 빌릴 수 있는 곳은 없다.”

나는 고민했다. 갚을 방법은 없었다. 목돈을 모은 적도 없고, 급하게 돈을 융통할 곳도 없었다.

다른 곳으로 이사한다고 해도 보증금에서 대출금을 차감하면 작은 오피스텔 보증금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이 대출은, 내가 자산을 ‘지키기 위해’ 버티고 있는 줄 하나였다.

사람들은 흔히 대출을 '공돈처럼 생긴 돈'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돈은 분명히 값을 요구한다.


그 대가는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이며, 신용등급이라는 숫자로 남는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없다면 나에겐 현재의 자산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대출은 빚이지만, 빚으로 내가 가진 것을 ‘보호’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출은 선택지가 아닌 생존이었다.


이자를 내면서도 나는 자주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그럴 때마다 다시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이 돈이 없다면,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명확하다.

갈 곳이 없다. 내가 지켜야 할 건 전세금이고, 그 전세금은 바로 내 거주지이며, 이자는 그 집을 지키기 위한 ‘월세 아닌 월세’다.

요즘은 누가 나에게 대출을 말하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출은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공돈이 아니라, 나를 지키는 돈이었다.” 대출을 통해 내가 얻은 건 단지 돈만이 아니다.


이자라는 압박 속에서도 살아낸 시간들, 그 안에서 지켜낸 공간,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더 철저해진 나의 금전 감각. 이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든 자산이다.


물론 대출 없는 삶을 꿈꾼다. 빚 없이 사는 삶, 누구나 꿈꾼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그곳에 도달할 수 없다. 대신 나는 오늘 하루의 이자를 견딘다. 언젠가 그 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지금의 나는 더 절약하고, 더 계획하며, 신용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

그래서 매달 빠져나가는 50만 원의 이자는 나의 책임이자 다짐이다.


그건 내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내 삶을 무너지게 두지 않기 위한, 작고도 단단한 버팀목이다.

누군가에게 대출은 실패의 징표일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대출은, ‘지키고 싶은 것을 지켜내기 위한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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