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힘든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와 씻었다.
힘든 하루 때문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날이지만, 왠지 배달을 시키고 싶었다.
단짠치킨, 골뱅이무침, 해물파전등, 나의 감정을 채우고 싶었다.
먹고 누워 TV를 보며 시즌별로 나오는 란제리, 시즌별 의상, 피부를 변화시켜 주는 화장품, 메이크업 상품등 눈에 들어오는 것을 마구 결제했다.
늦은 밤, 분명히 ‘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딱 내가 찾던 색조화장, 내가 좋아하는 란제리브랜드, 게다가 오늘까지 구매자에게만 주는 선물이라는 문구에 마음이 급해졌다.
주문 버튼을 누른 건 그 모든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르다.
그날 나는, 조금 외로웠다.
살면서 우리는 이유 없는 감정은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이유 있는 소비는 정말 드물다.
나의 소비 대부분은, 이유보다 감정에 의해 이루어졌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날은 좀 이상했다.
괜히 마음이 허했고, 누가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것 같았고,
왠지 나는 손해만 보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터벅터벅 집에 돌아온 나는 따뜻한 국 한 그릇보다
쇼핑몰 앱을 먼저 열었다.
작은 클릭 하나로 뭔가를 ‘얻었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었다.
택배 상자를 뜯을 때까지만 해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꼼꼼히 포장된 박스를 열며
“그래, 이 정도는 나에게 줘도 되지”라는
내면의 합리화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 시작됐다.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변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구매는 9-10시 사이에 이루어지며 새벽 3-4시에 환불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환불하고 싶어 질 때, 취소를 눌러야 한다.
신기하게도 전날의 물욕은 꼭 꿈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나는 아침에 쇼핑백을 바라보며 한숨을 쉰다.
“이거, 왜 샀지?”
반품을 결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이걸 정말 쓰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
‘감정적으로 샀던 거지, 실수였어.’
하지만 클릭 몇 번으로 샀던 물건은,
돌려보내려면 생각보다 많은 단계를 거쳐야 했다.
포장, 신청, 택배 예약, 반품비 결제...
그리고 무엇보다
“이 돈을 다시 환불받을 만큼 중요한 소비였나?”라는
자기비판적인 질문 앞에서, 나는 고개를 떨궜다.
결국, 나는 반품하지 않았다.
그 물건은 내 방 어딘가에 여전히 있고,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내 감정의 충동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또 하나의 ‘후회가 남긴 흔적’이 쌓인다.
혼자에게 하는 소비는 죄책감으로 남지만,
타인에게 하는 소비는 위로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신기하게도 나는 기분이 더 안 좋을수록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게 된다.
내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에게 고급 커피를 사고,
속상한 하루를 함께해 준 사람에게 저녁을 사주고,
말 한마디 건네준 동료에게 디저트를 전한다.
어쩌면 나는 그렇게 ‘이해받은 나’를 보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받은 위로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무언가를 주고 싶어졌다.
그건 감사이기도 하고,
내가 아직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다.
마음이 약해진 날에는 그런 소비가 자주 반복된다.
술, 커피, 고급 음식, 작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들.
그 물건들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내 감정의 잔물결들이 물든 소비의 흔적들이다.
짠테크를 시작하면서 나는 가계부에 금액만 적지 않기로 했다.
같은 금액의 커피라도
누군가와 나눈 따뜻한 대화 속에 산 커피와
홀로 쓸쓸할 때 충동적으로 집어든 커피는 의미가 다르니까.
그래서 요즘엔 이렇게 적는다.
카페 5,500원 / 기분전환 실패 / 비 내리는 날
온라인 쇼핑 38,000원 / 외로움 대처 실패 / 야근 후
선물 24,000원 / 위로에 대한 보상 / 대화 후 기분 회복
이 기록을 통해 나는 나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
무엇이 나를 지치게 했고, 어떤 감정이 나를 흔들었는지.
이제는 ‘돈이 아깝다’는 후회보다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반성이 먼저 나온다.
감정 소비를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우리는 인간이고, 인간은 흔들리는 존재니까.
그러니 더 중요한 건 ‘흔들릴 때 어떻게 멈추는가’인 것 같다.
내가 쓰는 돈을 이해하려면
먼저 내 감정을 이해해야 한다.
짠테크는 결국, 나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조용한 훈련이다.
이제 나는 소비할 때, 한 번 더 묻는다.
“이건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보다
“나는 지금 어떤 감정이 드는가?”
그 물음 하나만으로도
내 통장은 물론이고,
내 감정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