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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어디서 났어?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

소비의 원리, 자금출처의 중요성

by 신수현

"돈이 어디서 났어? 엄마한테 솔직하게 말해봐. "

어릴 적, 군것질이 간절히 당길 때가 있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그저 먹고 싶어서. 하지만 돈이 없었다.

엄마에게 돈을 요청하면 “무엇을 사려고?”라는 질문이 돌아올 게 뻔했다.


그래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학교 준비물이라고 1000원이면 될 일을 2000원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참고서를 사야 한다고 둘러대고 친구들과 연극을 보러 간 적도 있었다.


그렇게 거짓말을 하며 돈을 썼지만, 부모님은 따로 추궁하지 않으셨다.

나는 부모님이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 횟수는 늘어났다.

거짓말은 상대방이 속을 때 그 능력을 발휘한다고 한다.

매번 속아주면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조용히 물으셨다.

“돈이 어디서 나서 샀어? 사실대로 얘기해 봐.”

그 질문이 왜 그렇게 가슴을 찔렀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경제학을 전공한 분도 아니고, 가계부를 철저히 쓰는 분도 아니셨지만, 이미 알고 계셨다. 소비의 이면에는 반드시 ‘출처’가 있다는 것을.

지금도 나는 비슷한 생각을 한다.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사람, 외제차를 타는 사람, 다양한 브랜드 옷을 입은 사람을 보면 “와, 부럽다”보다는 먼저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저 돈은 어디서 났을까?”

“누가, 얼마나 벌었기에 저렇게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시기나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나는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텅장’을 보았고, ‘신용카드’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소비를 해버린 사람들을 봐왔기 때문이다.

사실 지출이라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술이 아니다.

누군가가 벌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고, 수입이 없다면 대출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 돈이 부모님의 용돈일 수도, 연인이나 배우자의 카드일 수도, 아니면 미래의 내가 감당해야 할 부채일 수도 있다.


정부도 이런 원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세청은 'PCI 시스템(개인소득추정 시스템)'이라는 것을 구축했다.


PCI(Probability of Concealed Income) 시스템은 납세자의 소비 형태, 카드 사용 내역, 자동차·부동산 보유 현황 등을 분석해 ‘이 사람의 실제 소득은 신고된 소득보다 많다’는 신호를 포착하는 시스템이다.

쉽게 말하면, “이 소비 수준이면 최소한 이 정도는 벌어야 정상이다”라는 것을 수치로 파악해, 소득 누락자나 탈루자를 잡아내는 기술적 장치인 셈이다.


예를 들어, 연소득이 2000만 원인데 외제차를 몰고, 연간 1500만 원어치 카드를 긁고, 5000만 원짜리 해외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PCI 시스템은 이를 놓치지 않는다.

“이건 수입보다 과한 소비다”라고 판단해 비과세 소득, 현금 탈루 등을 조사하는 근거로 삼는다.

어찌 보면 이 시스템은, 어릴 적 나에게 질문을 던졌던 엄마의 말과 똑같다.

“돈이 어디서 나서 샀어? 사실대로 말해봐.”

나는 매년 새해가 되면 가계부를 써보겠다고 다짐하지만, 며칠 지나면 포기하곤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소비는 마치 없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지출이 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홈쇼핑에서 뭔가를 산 것 같은데,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걸 왜 샀지?”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소비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그 책임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실제로 어떤 기업에서는 경리직원이 명품 쇼핑을 하는 것을 수상하게 여겨 추적한 끝에 공금횡령을 밝혀낸 사례도 있다. 지출 내역만 보면 그 사람의 삶과 경제적 위치, 심지어는 범죄까지도 드러난다.


한 유명 개그우먼이 아들에게 했다는 말이 있다.

“벌지 못하면 쓰지 말아야 해.”


이 얼마나 간단하고도 명쾌한 말인가. 우리는 종종 ‘신용카드’라는 허상을 통해 미래의 돈을 당겨 쓰며 현재의 만족만을 추구한다.

그 끝에 통장은 텅장이 되고, 카드 명세서에 찍힌 숫자를 보고 한숨을 쉬게 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신용카드보다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홈쇼핑에서 쿠션이나 란제리를 보고 충동적으로 사려다, “일시불 10만 원”이라는 결제창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예전 같았으면 3개월 할부로 끊었을 테고, 매달 3만 원 정도면 부담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돈이 빠져나가면 바로 ‘통장 잔액’이 줄어든다. 눈으로 확인되는 현실은 충동보다 강하다.


몇 번의 구매와 취소를 반복하면서 나는 나에게 묻는다.


“지금 이걸 사도 괜찮을까?”

“내가 지금 이 정도를 벌고 있나?”

“이 소비는 나에게 꼭 필요한가?”


소비는 감정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현실과 수입이라는 벽 앞에서 멈춰야 하는 문제다.

엄마는 단 한 문장으로 나의 모든 소비의 방향을 꿰뚫었다.


“돈이 어디서 나서 샀어? 사실대로 말해봐.”

그 질문은 어쩌면, 나 스스로가 매달 통장 잔고를 확인할 때, 가계부를 쓰다 말았을 때, 카드를 긁고서 멍하니 화면을 바라볼 때 반드시 나에게 던져야 할 질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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