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전에 어쿠스틱 기타를 배우고 싶어 샀던 기타, 취미로 음악을 배우기 위해 구입한 전자피아노, 의류 드라이비용을 아끼기 위해 큰맘 먹고 산 스타일러 등. 이사를 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작은 공간으로 가야 하고, 버려도 버려도 끝이 없는 짐들. 쓸만한 물건들은 당근마켓에 중고로 판매했다.
큰 집을 채우기 위해 소비하고, 작은 집으로 옮기기 위해 짐을 줄여가는 과정에서 감가상각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중고는 하루가 지나도 가격이 떨어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세금, 회계를 오래 다뤘던 나에게 새로운 사실은 아니지만...)
쓰레기를 버리려면 종량제 봉투를 사야 하고, 중고마켓에서 팔리지 않는 가구들은 버려야 하지만, 버리는데도 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
5만 원도 안 되는 책장이 폐기물 처리비용으로 2만 원 이상이 드는 현실…
단순한 쓰레기봉투값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사기 위해 지불했던 돈과 그 물건을 두기 위해 지불한 시간과 공간의 값이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움직이면 버리는 것이 많다.
그리고 그 ‘버려지는 것들’에는 분명히 ‘값’이 붙는다.
2. 퇴직금, 사라지는 한 달
직장인에게도 ‘버려지는 값’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퇴직금이다.
근무기간이 11개월이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퇴직금은 없다.
퇴직연금을 가입해주긴 하지만, 이것도 1년이 안되면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귀속은 회사에게 돌아간다.
딱 한 달 차이로 수백만 원이 ‘버려지는’ 것이다. 회사 다니기가 싫으면 그 한 달치 급여도 받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첫 직장에서 야근이 계속되어 그만두려고 했지만,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1개월을 채우고 퇴사했다.
직장생활을 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처음 급여를 받을 때 30만 원 남짓되는 월급이었다.
퇴직금이라고 해도 30만 원 정도이지만, 요즘같이 최저임금이 오르고, 지금은 30년 사회생활을 한 중년의 나이에 현재는 400만 원 안 되는 월급을 받고 있으니, 1년 치의 퇴직금만 해도 400만 원이 세이브되는 것이다.
더 오래 다녔어도 연차가 남아 있으면 그게 ‘돈’이지만, 안 쓰고 퇴사하면 그냥 ‘공중분해’된다.
회사에서 쌓아온 작은 권리와 혜택들은, 움직이는 순간 증발한다.
3. 이사, 이직, 이탈의 비용
변화를 선택한다는 것은 비용을 감수하는 것이다.
지불해야 할 비용보다 나의 변화가 크다면, 변화를 선택해야 한다.
이사할 때는 중개수수료, 이삿짐센터, 도배, 청소비 등 ‘보이는 돈’이 나가고, 이직할 때는 실업기간, 새로운 직장 적응 스트레스, 경력 단절 가능성 같은 ‘보이지 않는 돈’이 빠져나간다.
자영업자라면 더하다.
주소를 옮기면서 발생하는 간판 바꾸는 비용, 기존 단골 이탈, 관할 세무서 이전에 따른 행정 처리비용까지 따라온다.
개인사업자에 비해 법인사업자는 업종변경, 대표자 거주지 변경, 상호변경, 대표자 변경 등으로 법인등기를 변경할 때, 관련 수수료와 면허, 취득에 관련된 세금이 추가로 부과된다.
스타트업 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 개명을 하고 이름을 바꾸지 못했고, 이사를 간 후에 주소변경을 못해서 법원에서 1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었다.
이쯤 되면 묻게 된다.
"내가 얻으려는 것보다 잃는 게 많지 않을까?"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얻을 것'만 생각한다. 버릴 것을 계산하지 않는다.
4. 우리는 보이지 않는 비용을 모른 채 움직인다
대부분의 사람은 움직일 때 계산을 하지 않는다.
아니, 계산기를 꺼내긴 하지만, ‘앞으로 벌 수 있는 돈’만 따진다.
버리는 것들의 값은 항상 계산 밖에 있다.
이직하면 연봉이 얼마 오르는지 보지만, 퇴직금, 연차수당, 팀 평판, 업무 루틴의 이점은 뺀다.
이사하면 집이 더 크고 좋아졌다고 자랑하지만, 가전제품을 새로 사기 위해 지출된 돈, 커튼을 새로 달기 위해 맞춰야 하는 크기들, 그리고 하루하루 망설이며 짐을 버렸던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짠테크는 ‘버려지는 돈’부터 계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절약했다’고 착각한다.
사실은 덜 얻은 것, 혹은 몰랐던 비용이 있었을 뿐이다.
짠테크는 단순히 안 쓰는 게 아니다.
움직일 때 생기는 비용을 계산에 넣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직 전에 퇴직금은 챙겼는가?
이사 전에 남은 계약금은 돌려받을 수 있는가?
떠난 후 다시 쌓아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그 시간과 에너지를 돈으로 환산해 본 적 있는가?
가만히 있었다면 벌 수 있었던 돈, 버텼더라면 받을 수 있었던 퇴직금, 그대로 있었다면 챙길 수 있었던 성과급, 안 움직였더라면 낼 필요 없었던 이사비용. 우리가 움직이며 포기한 것들은 단지 '추억'이 아니라 ‘현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