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수포자, 미국에서 수학천재가 되다
미국학교에서의 수학은 쉽다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을 것이다. 나도 미국 가기 전부터 '거기 가면 수학은 쉽데~'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다.
내 초등학교 6학년 생활기록부에는 종합 의견 중 '수학적 사고력이 우수하며...'으로 쓰여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학 성적은 둘 다 60점대였다. 이후 중학교 내내 나는 수학 점수가 80점 이상이 된 적이 없었다. 그때 당시에는 '나는 수포자야' 하면서 다녔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공부를 안 한 거였다. (수년간 1대 1 수학 과외를 했다는 것은 비밀이다)
미국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수학 과목은 Geometry (기하학)이었다. 다행히 도형 부분은 그나마 내가 수학 중에서 좋아하는 분야였는데, 첫 수업 때에 교과서를 받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영어를 잘하지 못했어도 모든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이렇게 쉬운 문제들을 모두 공학계산기 를 써서 문제를 풀고 있었다.
얼마나 수학이 쉽게 느껴졌는지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배울 때였다. 다행히 나는 한국에서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공부한 적이 있어서 굉장히 쉬웠다.
피타고라스의 정의를 배우는 첫 수업 때에 a제곱 더하기 b제곱 은 c제곱과 같다는 증명을 엄청 길게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내가 배웠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공식을 외우고 숫자를 대입해 점점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공식에 대한 증명을 수업 내내 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를 생각해 보면 매우 지루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수학 선생님이 Quiz를 나누어주었다. (Quiz는 중간, 기말고사 외에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생각보다 비중이 높아 점수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가 다음과 같았다.
a = 3이고 b = 4 일 때 c를 구하시오.
이럴 수가, 한국에서 선생님이 '자 3,4,5 그리고 5,12,13 이런 건 그냥 외워라~' 하고 2초 만에 넘어가는 이 숫자들이 문제로 나오다니... 당연하게도 나는 아무 계산과 증명을 하는 식을 적지 않고 1초도 되지 않아 c=5라고 적었다. 그리고 다음문제는 'a=5 b=12 일 때 c를 구하시오'였고 나는 바로 13을 적었다. 그 외에 문제들도 한자리 수 혹은 두 자릿수로 이루어진 문제들로 계산기는커녕 풀이식을 적는 것조차 필요 없는 너무나도 간단한 문제들이었다.
약 20 문제를 푸는데 2분은 걸렸을까, 나는 다 풀고 멀뚱멀뚱 앉아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퀴즈 잘 보고 있니"라고 물어보셨고 나는 "다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들은 주변 학생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는지 주위를 둘러보지 않아도 체감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게 "정말 다 했니?"라고 다시 한번 확인하신 후 내 시험지를 가지고 가셨다.
시간이 다 되어 다른 수업을 갈 때에 같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이 내게 어떻게 그렇게 빨리 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그땐 아직 영어가 짧아서 그런지 지나가는 그 순간에 뭐라 대답할 겨를이 없어서 '그냥'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날, 점수가 적혀있는 퀴즈를 모두 돌려받았다. 나는 A+ (100%)였다. 감격이었다. '이럴 수가, 내가 고등학교 수학에서 A+을 받는 날이 오다니... 지난 3년간 본 적도 없는 점수다...!' 하지만 감격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문제를 맞힌 내 시험지에 풀이식이 한 줄도 없는 시험지를 보고 같이 수업 듣는 학생들은 정말 깜짝 놀랐다. 다른 친구들 시험지를 보니 3,4,5 나 5,12,13의 문제를 틀린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고 나와 수업을 같이 듣는 미국 학생들을 향해 '너네는 이게 계산기가 필요하니?' 라며 우쭐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동양인을 무시한 몇몇 학생들에게 지금이야말로 내가 그들을 무시할 기회였다.
몇몇 학생들은 본인들이 틀린 문제를 가르쳐달라고 내 자리에 오기 시작했고 점점 내 자리에는 학생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자 봐봐, 여기가 3이고 여기가 4면, 여긴 그냥 5야'
'아니 그걸 풀이도 없이 어떻게 알아?'
'그냥 머리로 해, 외워 그냥. 그리고 이건 5,12 이까 여긴 13이네'
'두 자릿수도 풀이 없이 하는 거야?'
'이건 여기 6이고 여기 8이니까 여긴 10'
'야 이 동양인 봐봐, 특별한 에시앙 (Asian - 동양인) 트릭을 쓰는 것 같아! 심지어 계산기를 쓰지도 않아! 선생님도 안 알려주는 트릭인가 봐!'
그렇게 나는 '너 동양 버전 피타고라스냐'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런 나를 보며 깜짝 놀라는 학교 친구들에게 나는 '너넨 한국 가면 전부다 F가 기본이겠다' 라며 놀렸다.
이렇게 나는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하고 '수학 천재'라는 이미지를 쌓아가기 시작했다.
비하인드 스토리
수학 수업의 첫 퀴즈에서 A+를 받은 나는 누나에게 전화해서 '누나 나 100점이다 아니 근데 얘네 다 바보들이야 왜 이렇게 멍청해' 라며 내 점수를 자랑했다. 그때 누나는 '잘했어 근데 나중에 훨씬 어려워지니까 미리 공부 잘해놔 너는 영어 원어민이 아니니까' 라며 충고를 해 주었는데, 나는 그 충고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다시 미국에서도 수포자가 되었다.
CH.02는 미국 고등학교 생활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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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01은 고등학교 입학 전 미국생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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