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100% 한국인인 시절이 있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뿐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다.
삼 남매의 둘째로 지극히 평범한 한국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다.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로서 어렸을 때에 동네의 유치원에 다녔고, 집 앞의 초등학교로 진학했다.
한국의 교육과정을 밟으며 내 나이는 한 자릿수에서 두 자릿수가 되었으며 살던 동네의 친구들 말고는 이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평범한 어린아이였다.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이름도 모르는 동네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저녁시간이 돼서 엄마가 나를 찾으러 나오거나 창문으로 내 이름을 불러 저녁 먹어야 하니 들어오라고 소리를 지르시기도 하셨다.
이보다 더 한국적일 수는 없는 삶을 살던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갑자기 듣게 된 소식이었다. 누나가 미국으로 유학을 간다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보던 그 나라로 간다고? 누나가? 유학은 또 뭐야? 공부를 왜 거기까지 가서 하지? 여기서도 나는 하기 싫어 죽겠는데...?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아 누나는 미국을 가는가 보다' 정도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고 있는 누나의 모습이 내겐 왜인지 너무 좋아 보였다. 실제로 누나가 미국에서 어떻게 사는지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냥 내 머릿속에서는 너무나 좋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홀로 개척해 나가는 것 같은 그런 모험적인 삶을 나는 항상 바랬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누나 덕분에 American Dream을 꿈꾸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부모님에게 나도 미국으로 보내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모님도 누나를 미국으로 보내며 나까지 염두를 미리 하고 계셨는지,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물론 부모님 입장에서 굉장히 큰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미국을 가는 것이 확정이 되고 나는 멋진 상상의 나라를 펼쳤다. 혼자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영화의 한 장면처럼) 책을 읽고, 어른처럼 혼자 비행기를 타며 누가 나를 대신하지 않고 내가 직접 모든 상황을 응대하며 익숙한 듯 멋있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모습 등 상상 속에 빠져 미국에 출국하기 전까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주변의 어른들은 어린 내가 혼자 미국으로 간다는 소식에 (나는 실제로 홀로 인천공항을 시작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솔해 주는 어른은 없었다) 혼자 어떻게 가냐며 걱정을 해주셨지만 나는 걱정이 정말 하나도 되지 않았다. 마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가는 것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미국이 집이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처럼 매우 설레었다.
그렇게 혼자 어른인 척하며 출국 심사를 거쳐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이 보기에 얼마나 웃겼을까 작은 아이 한 명이 최대한 어른인척을 하고 다니니) 이렇게 나는 미국인이 될 생각에 신나 있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해서도 역시 어린아이였단 나의 어른인 척 은 계속되었다.
여러 서류를 보여주며 미국 입국심사를 하는데에 아무래도 내 어른인 척 은 통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 혼자 입국하는 게 이상했는지 나는 갑자기 입국심사장에서 어디론가 보내졌는데, 그곳은 무서운 아저씨들과 경찰들이 있는 곳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유학생활을 담은 글에서도 언급되었다) 그곳에서 열심히 다음 비행기 시간이 있으니 나를 보내달라고 경찰아저씨에게 몸짓을 써서 설명했고, 한국에서 미리 적어둔 누나의 미국 번호를 보여주며 이곳에 전화하라고 말씀드렸다. 결국 미국에 살고 있던 누나와 경찰아저씨의 통화연결로 인해 나는 풀려날 수 있었다. 다행히 다음 비행기를 놓치지 않도록 잘 해결(?) 해서 나오면서도 '역시 뭔가 모험 같아 첫 난관을 잘 이겨냈군' 하며 스스로 대견해했었다. 오히려 더욱 모험하는 기분을 들게 해서 그곳에서 나온 후에는 더욱 신이 나 있었다.
미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안전하게 내가 지낼 홈스테이 집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나는 백인 가족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좋은 홈스테이 가족을 만나게 되어 정말 운이 좋았다. 내가 정말 빠르게 미국인화 가 되어간 이유도 역시 미국생활의 첫 시작을 미국가족 집에서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집에 들어간 첫 순간의 느낌은 아직 기억이 나는데, 너무나도 모든 게 미국스러웠고, 집에 들어가면서 한 번에 '와 미국이다'를 느낄 수 있었다.
집 앞마당에 주차되어 있는 대형 캠핑 트레일러, 문이 열려있는 차고 안에는 미국 아저씨의 공구 등이 가득했고 나를 반기는 세 마리의 대형견, 금발의 백인 아주머니와 남자아이, 그리고 붉은 얼굴의 아저씨 등 모든 게 너무나도 미국스러웠다. 사실 미국스러운 게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지만 머리가 알기 전에 피부로 체감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