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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큐 Mar 28. 2024

어떻게 살게 할 것인가?

자주 보는 경제잡지의 한 꼭지가 내 눈길을 끌었다. 다운증후군 자녀 두 명을 둔 한 부모가 장애인 종업원을 중심으로 기업을 일군 이야기였다. 위대한 미션은 개인적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장애인의 80%가 실직 상태- 2015년 미국 기준 -인 현실에서 두 아이의 미래를 고민하다가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라이트 부부는 커피숍을 열어 직원 대부분을 지적장애나 발달장애가 있는 사람들로 고용하기로 한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비티앤드보우커피》이다. 막내 비티- 당시 6살 -와 셋째 보우-당시 11살-의 이름을 따서 지은 사명이었다. 19명으로 시작한 카페는 문을 열자마자 승승장구하였다. 6개월 만에 10배나 큰 곳으로 이전하며 로스터리 설비까지 갖추게 되었으며, 7년이 지난 2023년 기준으로 17개 매장에서 장애인 4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비티와 보우는 거기서 일하고 있다. 참 유능한 부모다.



          나의 고민은 라이트 부부에 비한다면 소시민적이다. 현재 내 깜냥으로는 제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 높은 확률로 우리 부부가 제이보다 일찍 죽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제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 때문에 제이가 혼자 남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복잡한 문제다. 내가 아무리 많은 재산을 물려줘도 - 난 항상 나의 성공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있다 - 지켜낼 수 없으면 허사이기 때문이다. 제이처럼 어리숙한 희생양을 노리는 늑대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내는 종종 내가 사회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 때문에 나는 살아있을 때는 물론 사후에도 제이- 혹은 제이의 재산 -를 노리는 승냥이 같은 무리들로부터 내 딸을 보호해야 한다. 이렇게 나의 SF적인(?) 계획들은 탄생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계획은 게임이론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믿을 놈이 없기에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여러 명에게 각자 충분한 보상을 주고 제이를 지키게 한다. 만약 누군가가 이를 어기고 제이를 노린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를 저지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 할 수 있다면 내가 없는 세상에서 제이를 지켜낼 수 있다. 마침 어릴 적 친구 하나가 - 사실 십 수년째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사이다 - 게임이론을 전공해서 경제학과 교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참이었다. 그 녀석에게 부탁해서 계획을 실현하면 된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점이 생각났다. 이 모든 구조를 그 친구는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내가 그 녀석보다 오래 살아야 하는데?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 녀석이 혹시 누군가에게 이를 발설한다면?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야심 찬 계획은 무산되었다.



          두 번째 방법은 류츠 신의 대작 《삼체》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래서 사람은 책을 읽어야 하나 보다. 소설에서는 '동면'이라는 기술을 활용해 주인공들이 미래로 간다. 동면은 사람을 급속 냉동해서 늙지 않게 하는 기술인데 이미 기술적으로는 거의 현실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동면이 상용화된 어느 시점에 아내와 나 둘 중 하나가 동면에 들어가고 나머지 하나가 죽을 때 동면에 들어갔던 사람이 깨어나 제이의 나머지 인생을 함께 하면 된다. 하지만 여기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이렇게 하면 우리 가족이 함께 사는 기간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전략이었다.



          이렇게 나는 한동안 현실과 허무맹랑함을 오갔다. 그리고 내가 망상에 잠겨 있는 사이 제이가 잘하는 것이 생겼다. 퍼즐 맞추기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새로 장착된 제이의 무기는 바로 그림이었다. 투박하게 잡은 펜으로 그린 제이의 그림은 무언가 느낌이 있었다. 형태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사물의 특징을 잘 잡아내는 듯했다. 무엇보다 색감이 뛰어났다. 아이패드를 사용해 그린 그림들은 더욱 그랬다 -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는 다르다 -. 한의사를 하기 전 수년간 패션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했던 아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고 했다. 아내는 인스타그램에서 전시를 한다는 계획으로 제이의 그림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있다.



          물론 내 딸이라 별 거 아닌 것도 대단한 강점으로 보이는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워낙 느린 아이라 조금만 잘해도 엄청 잘해 보이는 착시효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디터를 그만둔 지 오래돼서 아내의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센터 선생님들도 시각적인 부분을 제이의 강점으로 꼽는 것으로 보아 아주 근거가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 아직까지는 - 제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내가 너무 먼 미래만 생각한 듯하다. 지금 내가 할 일은 공상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전략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제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지원을 해 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할 일이다. 이렇게 해 나가다 보면 어느덧 나의 꿈은 확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소시민적 자세에서 벗어나 제이 한 사람이 아닌 제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해낼 수도 있다는 희망이 보인다. 혹시 아는가? 나도 제이의 이름을 딴 회사를 하나 운영하게 될지도? 이름은 《제이 갤러리》로 하면 되려나? 그전에 우선 제이가 좋아하는 것부터 더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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