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친구와의 가족모임에서 도도해 보이는 친구 딸이 엄마에게 귓속말을 한다. "쟤 바보 같아." 물론 여기서 '쟤'는 내 딸이다. 제이는 그런 말을 듣기나 했는지 옆에서 신나게 놀고 있다. 나는 친구가 딸을 야단치는 것을 짐짓 너그러운 표정을 지으며 바라본다. 하지만 이미 머릿속으로는 내 딸이 바보가 아니라는 논리를 개발하고 있다. 제이가 바보라는 기준은 뭐지? 저 녀석의 개인적인 잣대 아닌가? 그럼 그저 자기보다 못하다는 거 아닌가?
논리를 발전시켜 나간다. 시험에서 80점 맞는 애가 보면 50점은 바보인데 90점을 맞은 친구가 보면 좀 전에 50점을 바보라고 했던 - 80점 맞은 - 그 아이도 바보다. 그런 식으로 올라가다 보면 바보가 아닌 사람은 전국 수석 단 한 명뿐이다. 뿐만 아니다. 비교의 잣대는 얼마든지 있다. 외모, 재산, 학벌, 직업, 연봉, 심지어 골프 스코어에서도 줄 세우기는 이어진다. 결국 이 멍청한 게임에서 살아남는 자는 없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내가 사는 세상은 '모두가 바보인 세상'이 되는 것이다!!
그럴듯한 논리다. 만족스러움에 미소가 지어진다. 지금은 타이밍을 놓쳤지만 다음에 또 한 번 제이를 바보라고 하면 친구와 친구의 아내를 예로 들며 세상의 진리를 알려주리라. "네가 제이를 바보라고 하는 순간, 너희 엄마 아빠도 바보가 되는 거야! 알았냐 이 꼬맹아!" (이러니 내가 아내로부터 초등학생 같다는 소리를 듣는 거다) 그러다 문득 얼굴이 붉어진다. 있지도 않은 일로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에 머쓱해진다. 이에 더해 한 가지 생각이 스친다. 이런 비교에 가장 익숙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던가. 온갖 데에 순위를 매기며 좋아하던 사람이 바로 나 아닌가. 어쩐지 낯설지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제이는 나의 스승일지도 모른다. 평생 교만한 삶을 살아왔던 나는 제이를 통해 세상을 배운다. 한때 '너무 똑똑한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지? 천재는 일찍 죽는다는데? - 사실과 다르다. 천재들은 오래 산 경우가 더 많았다. 뉴턴도, 피카소도, 다빈치도 모두 장수했다-' 라며 건방을 떨던 나는 벌써 몇 년째 네비에 'OO 발달장애아동센터'를 찍고 제이를 데리고 다니고 있다. 딱딱한 자세도 버린 지 오래다. 물론 레이저를 뿜어 내는 눈빛은 여전하지만 제이와 관련된 분들을 만나면 어색하게나마 미소를 지으며 연신 '고맙습니다'를 연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제이와 함께 하면서 교만했던 지난 사십 년을 뒤로하고 덜 교만한 삶을 살고 있다 - 타고난 천성을 바꾸기는 무척 어렵다 -.
뿐만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능력도 생겼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보다 더 공감을 못하는 제이를 보며 그렇게 됐다. 한때 아스퍼거 증후군을 의심했던 아내도 내가 좀 나아졌다는 것만은 인정한다 - 물론 전보다 나아졌다는 이야기다 -. 요즘은 개가 나를 보고 짖으면 눈싸움을 하는 - 아내가 무척 싫어하는 행동이었다 - 대신 '조그만 녀석이 얼마나 무서우면 저렇게 짖겠어'라고 생각한다. 장족의 발전이다.
가장 많이 변한 건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장애인, 동성애자 등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이 얼마나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지도 알게 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그들을 무시하거나 비하한 적은 없다. 그저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하지만 무관심이 가장 나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리석게도 나하고는 상관없을 것 같은 일들이 당장 내 앞에 놓인 지금에야 비로소 그렇게 느낀다.
나는 발을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쥐가 났을 때를 제외하고는 내 발을 만져 본 적도 별로 없다. 어머니께서는 "지 발도 떼어 버리고 싶은 아이'였다고 회상하신다. 그런 내가 제이의 발은 만져 준다. 제이가 잘 때 발 만져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잘 때가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제이의 발을 만진다. 그렇다. 나는 제이를 만나고 변했다. 이제 기세를 몰아가야 할 때인 거 같다. 제이의 발을 만지는 데 그치지 않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도 만져줄 때인 것 같다. 그들에게 그리 친절하지 않은 사회에 막막해하고 있을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때인 것 같다. 남의 발도 만진 내가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역시 아이는 인생의 스승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