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약물치료에 대한 윤리적 성찰

by 신성규

나는 사람들이 우울증 약을 복용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약은 때로 사람을 살릴 수 있지만,

또한 사람을 끝으로 몰고 가는 연료가 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믿는다.

“기분이 나아지면 삶도 괜찮아질 거야.”

하지만 문제는 기분이 나아지기 전에, ‘움직일 힘’이 먼저 생긴다는 데 있다.

에너지가 생긴 순간, 그동안 눌려 있던 절망과 죽음 충동이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


자살 시도는 심연 속에 있던 것이 발현되는 것이다.

갑자기란 말은 없다.


사람들은 “그가 갑자기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살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축적된 고통, 무기력, 자기부정, 고독, 의미 상실의 잔해들이

조용히, 아무 말도 없이, 심연 속에 침전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 행동할 힘이 주어졌을 때 표면 위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 힘이 약에서 왔을 수도 있고, 외부 자극에서 왔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이전에 이미 마음 깊은 곳에 ‘죽음이라는 문장’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약은 중요하다.

하지만 약은 문장을 수정해주지 않는다.

그저 잠시 잉크를 멈추게 하거나, 고통을 잠재울 뿐이다.


진짜 치료란

그 문장이 왜 쓰였는지를, 그 글자가 어떤 절망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읽어주는 과정이다.


많은 이들이 약을 먹고 “살만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삶의 방향을 찾았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일시적인 ‘가벼움’일 수도 있고, ‘작동 가능함’일 뿐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약은

심리치료, 사회적 안전망, 의미 회복을 동반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에너지만 회복된 상태는,

고통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은 채 행동 능력만 생긴 상태다.

그것은 오히려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약은 때때로 사람을 살린다.

그러나 약만으로는 사람을 이해받게 하지 못한다.

약은 증상을 완화하지만, 고통을 해석하진 않는다.


죽음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 사람 안에 있었다.

약은 그것을 꺼낼 수도, 밀어낼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물어야 한다.

“이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가 견딜 수 없는 것은 무엇이었는가?”


약이 아니라, 질문이 사람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함께 던져주는 존재가 치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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