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당한 감수성

by 신성규

나는 감정을 기반으로 살아왔다.

세상을 감정으로 바라보고,

사람의 얼굴을 감정으로 해석하며,

나 자신을 감정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때로는 그 감정이 너무 날카로워

나를 찌르고,

때로는 너무 거칠어

나를 휘청이게 했지만,

그건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이틀 전

신체화와 폭식, 불안과 예민함에 지쳐

나는 다시 항우울제를 집어 들었다.

처음엔 한결 나아진 듯했다.

과도한 감정이 조용해지고,

쏟아지던 자극들이 잦아들었다.

세상이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조용함 속에

내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무표정해진 얼굴.

둔해진 감정.

타인의 아픔에 반응하지 않는 나.


공감은 내 삶의 언어였는데

그 언어가 내 안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슬퍼도 울지 않고,

기뻐도 웃지 않으며,

그저 “알아”라고 말은 하지만,

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을 잃은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없었다.


나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작고 사소한 아름다움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하찮은 단어 하나에도

의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약은

그 예민함을 덮었고,

나의 감정이라는 수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 수면 아래,

나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이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고통이 다시 온다 해도

감정을 빼앗기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감정이 나를 망가뜨리더라도

그 감정으로 살고 싶다.

슬퍼서 쓰러지더라도,

울어서 지치더라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


나는 상처받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느낀다.


감정 없는 평온은 나에게,

고요한 죽음과 다름없다.


나는 다시 울고,

다시 웃고,

다시 반응하기 위해

나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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