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을 기반으로 살아왔다.
세상을 감정으로 바라보고,
사람의 얼굴을 감정으로 해석하며,
나 자신을 감정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때로는 그 감정이 너무 날카로워
나를 찌르고,
때로는 너무 거칠어
나를 휘청이게 했지만,
그건 살아 있음의 증거였다.
이틀 전
신체화와 폭식, 불안과 예민함에 지쳐
나는 다시 항우울제를 집어 들었다.
처음엔 한결 나아진 듯했다.
과도한 감정이 조용해지고,
쏟아지던 자극들이 잦아들었다.
세상이 조금은 견딜 만해졌다.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조용함 속에
내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을.
무표정해진 얼굴.
둔해진 감정.
타인의 아픔에 반응하지 않는 나.
공감은 내 삶의 언어였는데
그 언어가 내 안에서 말라가고 있었다.
슬퍼도 울지 않고,
기뻐도 웃지 않으며,
그저 “알아”라고 말은 하지만,
가슴으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다.
감정을 잃은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없었다.
나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작고 사소한 아름다움에도
눈물을 흘릴 수 있었고,
하찮은 단어 하나에도
의미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약은
그 예민함을 덮었고,
나의 감정이라는 수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그 수면 아래,
나는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는 이 약을 먹지 않기로 했다.
그 어떤 고통이 다시 온다 해도
감정을 빼앗기는 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
나는 감정이 나를 망가뜨리더라도
그 감정으로 살고 싶다.
슬퍼서 쓰러지더라도,
울어서 지치더라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
나는 상처받기 위해 산다.
그리고 그 상처로 인해
세상의 빛과 그림자를 느낀다.
감정 없는 평온은 나에게,
고요한 죽음과 다름없다.
나는 다시 울고,
다시 웃고,
다시 반응하기 위해
나로 돌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