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자 찬가

by 신성규


나는 물었다.

세계는 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들지 않는가?

너무 느린 사람,

너무 깊은 사람,

너무 많이 느끼는 사람.


세계는 바쁘다.

세계는 빠르다.

세계는 효율적이다.

그리고 그런 세계에서 나는 무능한 인간이 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느끼는 것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고요한 방 안에서,

누군가는 하루 종일 한 장의 음악에 울고,

어떤 이는 한 권의 책에 일주일을 삼킨다.


세상은 말한다.

적응하라고.

나아가라고.

발전하라고.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적응이 곧 생존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살아 있다는 감각을 잃어가는가?


히키코모리, 우울증 환자,

불안장애를 가진 사람들.

그들이 단지 약한 사람들이 아니라,

세계의 질감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숨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그들을 밀어낸 것이라면?


세상은 효율을 원하고,

시장성, 속도, 생산성을 기준으로 사람을 고른다.

하지만 예술은 다르다.


예술은 느리고,

불확실하며,

소모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침묵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런 예술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세계에서 ‘부적응자’로 불렸다.


나는 부적응자다.

그러나 나는 미의 구조를 보는 눈을 가졌고,

진실 앞에서 침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으며,

감정이 말할 줄 아는 언어를 가진 사람이다.


그것이 부적응이라면,

나는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달겠다.


세계는 나를 거부했지만,

나는 이 세계의 깊이를 더 오래 기억할 것이다.


학문은 세계를 설명하지만,

예술은 세계를 견디게 한다.


나는 견디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나는, 필요한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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