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해부대 위에서

by 신성규

누나는 말했다.

“모든 사람이 자기 감정을 해부하고 싶어하진 않아.”


그 말은 나를 멈추게 했다.

나는 늘 그랬다.

모든 감정을 해부하고, 분해하고, 이름 붙이려 했다.

그것이 성찰이고, 치유라고 믿었다.

나는 내 마음속의 상처를 절개하고,

그 내부를 들여다보며,

거기서 진실을 꺼내야만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아가는 건 아니라는 걸.


어떤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 감정이 왜 생겼는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논리적으로 파헤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낀다.


그들은 감정이 바람처럼 지나가게 내버려두고,

그것을 굳이 붙잡지 않는다.

아프면 아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살아간다.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며

때로 답답함을 느꼈다.

“왜 말하지 않아?”

“왜 더 깊이 생각하지 않아?”

“왜 자신을 분석하지 않아?”


나는 내 방식이 옳다고 믿었다.

그래서 내 해부를

그들도 하길 기대했다.

심지어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그것은 때로 폭력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자기해석을 강요하는 것은

마치 벌거벗은 심장을 꺼내 놓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의 깊이를

타인의 기준처럼 내세웠다.

나는 고통의 해부를

치유의 도구로 여겼지만,

누군가에겐 그것이

상처를 더 깊게 도려내는 일일 수도 있었다.


이제는 배운다.

내 방식만이 옳은 것이 아니라는 것.

누군가는 말 없는 감정으로 살아가고,

그 조용한 방식 속에도

충분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나는 여전히 내 감정을 해부하며 살아가겠지만,

이제는 타인의 고요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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