튤립으로 보는 상징과 본질

by 신성규

17세기 네덜란드.

한 송이의 튤립이 집 한 채와 맞바뀌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돈을 쏟아붓고, 미래를 저당잡히며, 꽃잎을 숫자화했다.

튤립은 이제 식물이 아닌 환상이 되었고, 욕망의 도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기호로 떠올랐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기호는 무너졌다.

튤립은 다시 풀로 돌아왔다.

대기근이 덮치자 사람들은 그 잎을 씹고, 뿌리를 삶아먹었다.

튤립은 더 이상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칼로리 단위의 물질이 되었고, 시장의 상징은 식탁의 현실로 전락했다.


이 아이러니는 우리에게 묻는다.


“사물은 본래 무엇인가?”


튤립은 처음부터 그냥 꽃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거기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아름다움에서 희소성을, 희소성에서 가격을, 가격에서 욕망을 낳았다.


사물은 본질을 가지는가?

아니면 모든 본질은 우리가 부여한 해석의 총합인가?


하이데거는 말한다.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그것과 관계 맺는 방식 속에서만 존재한다.”


튤립은 그저 거기 있던 어떤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그것을 무한한 상징의 껍질로 감쌌다.

그러나 기아 앞에서, 모든 껍질은 벗겨졌다.

상징은 붕괴했고, 본질은 씹혔다.


튤립 투기는 인간이 어떻게 사물을 기호로서 소비하는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튤립의 가치는 그것이 튤립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상승했다.


튤립은 단 한 번도 집 한 채의 사용가치를 대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장은 그것을 그렇게 만들었다.

즉, 가치는 진실이 아니라, 합의된 망상이다.


그러나 대기근은 이 망상을 파괴한다.

시장적 가치는 사라지고, 생물학적 가치만 남는다.

그것은 더 이상 ’원하는가?’가 아니라 ’살 수 있는가?’의 문제가 된다.


인간은 언제나 이야기로 세계를 포획해왔다.

튤립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고, 믿고, 거래했다.

그러나 굶주림 앞에서는 이야기는 무너지고, 신체의 필요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비를 본다.


인간은 자기가 만든 상징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그 상징을 씹어 삼키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은 스스로 만든 세계를 사랑하지만, 필요 앞에서는 그 세계를 망설임 없이 해체한다.

이 해체의 순간이야말로 인간의 실존적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튤립은 꽃이었다.

그것은 욕망이 되었다가, 굶주림의 대상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 여정을 통해 본다.


“모든 상징은 궁극적으로 생존의 껍질이다.”


철학이 가르쳐주는 건 이것이다.

아무리 고귀한 것도, 땅 위에서 굶는 자에겐 뿌리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인간이 만든 가치, 상징, 문화… 그 모든 것들은

위기에 닿을 때 비로소 진실해진다.

그리고 그 순간, 튤립은 꽃이 아니라 철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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