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업보라는 말을 들으면 미신처럼 여긴다.
“선을 행하면 복을 받고, 악을 행하면 벌을 받는다”는 이 단순한 도식은
지나치게 도덕적이고, 어린아이의 교훈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믿는다.
업보는 실제로 존재한다.
비단 종교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존재의 에너지 구조상 그것은 순환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분노하고 공격할 때,
그 화살은 타인을 향하는 듯 보이지만,
그 화살을 먼저 ‘쏘는 자’의 내면에서 심리적 파괴가 발생한다.
분노는 내 몸을 긴장시키고,
비난은 내 사고를 좁히며,
복수는 나를 대상에게 묶어버린다.
즉, 상처를 준다는 행위는 동시에 나 자신을 고립시키는 작용을 낳는다.
공격은 상대의 영혼을 할퀴는 동시에 내 영혼을 갈라놓는다.
그래서 공격은 언제나 먼저 나를 해친다.
행동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처럼 순환한다.
내가 뿜어낸 감정은 언젠가 형태를 바꿔 나에게 돌아온다.내가 만든 관계의 파문은 내 삶의 구조를 형성한다.
타인에게 퍼뜨린 어둠은 결국 내 삶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것은 단지 ‘도덕적 정산’이 아니라
존재의 동역학이다.
사람들은 업보를 초월적 판단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내가 쏘아올린 공이 다시 지구의 곡률을 따라 되돌아오는 것에 가깝다.
말은 구조를 만들고, 감정은 파장을 낳는다.
의도는 행동을 넘어서 삶의 분위기를 규정한다.
당신이 매일 내뱉는 말, 뿜어내는 감정, 쌓이는 기억들이
결국은 당신이 살아가는 내면의 기후가 된다.
그리고 그 기후는 당신을 형성한다.
이것이 업보다.
업보란 신의 심판이 아니라, 구조적 귀결이다
공격성은 타인을 겨누는 듯하지만,
항상 자신의 영혼을 먼저 손상시킨다.
분노는 즉시 힘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자신을 소진시키는 가장 빠른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 단순한 진리를 모른다.
혹은, 알지만 외면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은 순환하고, 결국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이 ‘업’이고, 그 순환의 궤도가 바로 당신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