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결론이 무엇인가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가요?”
그럴 때마다 입을 다물게 된다.
왜냐하면 이 글들은
답을 향해 쓰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언제나 질문을 향해 움직인다.
의도를 물었을 때,
어쩌면 가장 정확한 대답은 이것일지도 모른다.
“균열을 열기 위해.”
해석되지 않은 감정,
다른 사람의 언어로 뒤덮인 기억,
그 익숙한 표면을 조용히 흔들기 위해
문장은 쓰였다.
글은 누군가를 이해시키지 않는다.
그 대신
잊고 있던 의문을 다시 불러온다.
내면 깊은 곳에 고요히 침잠한 채,
한 번도 끝까지 따라가본 적 없는 질문을.
문장은 위로의 손길이 되기를 거부한다.
그보다는,
감정의 구조를 드러내는 조명처럼 작동하기를 원한다.
감정은 언제나 구조를 따른다.
무너진 사랑,
지워진 말,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존재론적 기하학이었다.
그 패턴을 꿰뚫어보지 않는 한,
고통은 반복된다.
그래서 문장은
응답이 아니라,
혼란이다.
정리된 해석은 잠시의 안정을 줄 뿐,
균열을 통과한 질문만이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있다.
사람들은 답을 원하지만,
삶은 언제나
질문 속에서 진짜로 움직인다.
질문은 한 존재를 흔들고,
그 흔들림 속에서 새로운 언어가 생긴다.
그것이 문장의 목적이라면,
글은 더 이상 설명이 아닌
해체의 시작이 된다.
그러니 이 글은 선언이다.
답을 쓰지 않겠다는 선언.
누군가의 세계를 정리하는 대신,
내면의 질문을 다시 살아나게 하겠다는 의지.
한 문장이 끝나는 자리에서
언어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진실하게 해석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