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섹스를 부끄러워하지만,
임신은 자랑스러워한다.
이 아이러니는 우리의 시대가 가진 욕망에 대한 위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섹스는 숨겨야 하고,
임신은 축하받는다.
쾌락은 추하고,
생산은 고귀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섹스를 감추고,
그 결과만을 기념하게 되었을까?
섹스는 생명 탄생의 기원이며,
사랑의 표현이고,
가장 본능적인 언어다.
그러나 사회는 그 언어를 검열하고,
그 욕망을 수치심으로 포장한다.
쾌락은 이기적이다.
그렇기에 사회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쾌락은 즉각적이며 목적 없는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 어떤 생산도, 결과도, 성과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임신은 다르다.
그것은 결과를 가지며,
가시적인 생명을 ‘만드는’ 일이다.
즉, ‘쓸모’와 ‘의미’가 부여된 섹스의 정화된 잔상이다.
사회의 눈에 띄는 건, 항상 그 ‘목적의 성공’뿐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단어로 섹스를 정당화하려 한다.
사랑 없는 섹스는 경멸된다.
이 모든 규범 아래에서
사람들은 욕망 자체를 감추는 훈련을 받는다.
그러나 감춰진다고 해서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억압된 욕망은 더 깊은 그림자가 되어
사회 저변에 깔려 있고,
그 억압된 기운이 문화와 제도의 틈틈이
기형적인 형태로 분출된다.
여성이 임신하면 사람들은 축하한다.
그 몸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낸다는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몸이 섹스를 즐긴다는 사실에는
언제나 은근한 멸시와 감시의 시선이 깔려 있다.
이것은 결국,
여성의 몸이 기능과 생산성으로만 정의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섹스가 목적 없는 쾌락으로 소비되는 순간,
그 몸은 더 이상 축하받지 않는다.
사회는 기뻐하지 않는다.
사회는 목적을 갖지 않은 몸을 통제하고 싶어 한다.
아이를 자랑스럽게 공개하면서도,
그 아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집단적 침묵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모순적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 모순은 아이에게까지 전해진다.
하지만 아이는 알고 있다.
그 대답이 거짓이라는 걸.
사회는 아이에게서 섹스를 숨기고,
그러면서도 섹스의 결과를 가장 소중히 여긴다.
이 모순이 계속될수록,
우리는 점점 더 욕망과 진실로부터 멀어져 간다.
섹스는 숨기고, 임신은 축하한다는 태도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감정과 욕망을 부끄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문화다.
그러나 인간은 결과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순간에 살고, 감각에 흔들리고,
쓸모없는 기쁨 속에서 진짜 자신을 발견한다.
섹스를 부끄러워하고 임신만을 축하하는 세계는
인간을 기능으로 환원시키는 세계다.
그리고 그 세계는
욕망을 억누르다 끝내,
진실과 생명을 모두 기만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제 말해야 한다.
욕망은 부끄럽지 않다고.
쾌락은 죄가 아니라고.
섹스는 인간의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이며,
그 자체로 삶의 일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