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고통

by 신성규

나는 종종 쾌락의 정점을 느낄 때 이상한 불안감을 경험한다. 마치 지금 느끼는 이 즐거움이, 곧 무언가로 대체될 것이라는 예감. 우리가 느끼는 기쁨과 행복은 마치 줄타기 같아서, 한쪽 끝으로 기울면 반드시 반대편의 힘이 작동하는 것 같다. 쾌락은 고통을 피한 상태가 아니라, 고통과의 진자 운동 속에서 탄생한다.


우리는 공기를 의식하지 않지만, 질식 위기를 겪은 뒤에야 그 소중함을 안다. 마찬가지로, 쾌락은 고통의 부재에서가 아니라, 고통의 대비 속에서만 실감된다.


배고픔이 있어야 음식의 맛이 있고,

이별이 있어야 사랑의 무게를 알고,

긴장이 있어야 이완의 황홀이 존재한다.


쾌락은 고통이 만들어준 기준점 위에 세워진 감각의 타워다. 절대적인 쾌락은 없고, 상대적인 해소만이 있을 뿐이다.


도파민 회로는 반복적인 자극에 둔감해진다. 이는 뇌가 쾌락 자체보다, 쾌락을 얻는 과정에서의 기대감에 더 민감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쾌락을 쫓을수록, 실제로 느끼는 즐거움은 줄어들고, 고통스러운 공허감만 커진다.


“이제 아무것도 즐겁지 않다”는 감정은, 쾌락을 너무 많이 좇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고통은 없는데 삶은 즐겁지도 않다 — 이것이 가장 위험한 상태다.


쾌락은 순간적이고, 감각적이고, 외부 자극에 의존한다. 반면, 고통은 지속적이고, 내면적이며, 의미를 부여하도록 만든다.


쾌락은 도달하면 사라진다.

고통은 해석하면 변형된다.


고통은 인간을 사유하게 만들고, 타인을 이해하게 만들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씨앗이 된다.

어쩌면 쾌락은 고통을 견디기 위한 보상이고, 고통은 쾌락을 넘어서는 성장을 이끌기 위한 자극일지도 모른다.


삶은 쾌락과 고통 사이를 오가는 진자다. 이 진자가 멈춘다면, 우리는 생명도, 감정도, 의미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중요한 건 어느 한쪽에 집착하지 않는 것. 쾌락은 고통을 끌어들이고, 고통은 쾌락을 만들어낸다.


진정한 평온은, 쾌락이 없을 때도 괜찮고,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마음이다.


삶은 진동이다. 그리고 그 진동이 곧, 살아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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