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도파민, 그리고 혼란의 글쓰기

by 신성규

정보가 들어올 때, 나는 멈추지 못한다.

나에게 세계는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해석되어야 하는 것,

그리고 해체되고 다시 붙여져야 하는 것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 도파민 수용체는 평범하지 않은 게 아닐까?

사람들이 피곤해할 정도로,

나는 대화 속에서 주제를 끝없이 파고들고,

단어 하나에서 우주의 구조를 도출해낸다.


누군가는 내 말을 듣다 어지럽다고 한다.

“정신병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나도 그렇다.

나의 정신은 항상 조금 과잉 상태에 있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철학책을 읽었다.

그 단어들은 나보다 훨씬 크고,

그 문장들은 나의 사고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래서 정신이 따라가지 못했다.

시간이 걸렸고, 하루를 삼켰다.


피로했다.

그 피로는 감정이 아니라 인지적 탈진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 책들의 문장과 나의 사고가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유의 흐름 안에서 속도를 늦추는 법을 잃었다.


철학은 나를 괴롭히는가?

아니면 구원하는가?

그 물음에 아직도 확신은 없다.

다만 나는 안다.

철학은 행복이 아니라 질문을 견디는 기술이다.


사람들은 내 글을 읽고 말한다.

“이런 생각을 왜 하니?”


나는 그 말 앞에서 자주 움찔한다.

나는 내 생각이 지나치게 방대하다는 걸 안다.

그리고 그 안에 약간의 거만함도 있다는 걸 안다.

“나는 너보다 더 많이, 더 깊게 생각했어.”

그 어두운 마음이 무의식 중에 밑줄처럼 깔려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쓰고 싶다.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왜냐하면 혼란은 종종 진실보다 먼저 도착하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처음엔 언제나 난해하고 무례하며,

이해받기 전엔 정신병처럼 보인다.


나는 생각한다.

이 긴 사유의 흐름을 아포리즘으로 압축해야 할까?

짧고 예리하게 잘라서,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형태로 포장해야 할까?


그런 유혹이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철학은 문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문장을 끝낸 뒤에도 남아 있는 침묵에서 완성된다.


나는 그 침묵까지 쓰고 싶다.

사람들이 불편해하더라도.

그 불편함이,

곧 생각이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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