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설탕과 니코틴으로 도파민 회로를 달래왔다.
설탕은 단번에 혈당을 끌어올려 뇌를 잠시나마 평화롭게 만들고,
니코틴은 폐 깊숙이 스며들어 긴장과 불안을 부드럽게 풀어준다.
그것들은 짧고 확실한 위로였다.
그 달콤함과 연무 속에서 나는 잠시 나 자신을 잊는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를 집어삼키진 않는다.
설탕은 나를 조금씩 무겁게 하고, 니코틴은 내 폐를 조금씩 갉아먹지만,
그들은 나를 끝내 파괴하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나다.
비록 더 피곤하고, 더 약해졌을 뿐.
사랑은 다르다.
사랑은 나를 잠시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자체를 녹여서 다른 사람 속으로 흘려보낸다.
설탕과 니코틴은 내가 쥐고 있지만,
사랑은 나를 쥔다.
그리고 나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 사랑에 의존하고 싶은 내 마음속에는,
단순히 위로받고 싶은 욕망을 넘어,
나라는 경계를 무너뜨리고 싶은 파괴 본능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너와 나’라는 선을 지우고,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녹아내리고 싶은 본능.
사랑의 순간, 나는 너 안에서 나를 잃고,
그 잃음 속에서 완전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 완전함은 파괴다.
나라는 주체가 흐릿해지고, 너의 기분과 표정이 곧 나의 기분과 표정이 된다.
너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 되고, 너의 무관심이 나를 허물어뜨린다.
사랑은 달콤함보다 더 잔인하다.
설탕은 하루를 버티게 하지만, 사랑은 나를 무너뜨린다.
그럼에도 나는 사랑을 찾는다.
설탕과 니코틴이 줄 수 없는 그 극단의 몰입,
나를 완전히 비워서 다른 존재로 채우는 그 도취.
그 무너짐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사랑을 통해 하나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 완벽하게 부서지고 싶은지도 모른다.
모든 방어가 무너지고,
나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환희.
그렇다면 사랑은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나에게는 가장 치명적인 마약이다.
설탕과 니코틴은 폐와 혈관만을 갉아먹지만,
사랑은 나라는 존재 전체를 해체한다.
그리고 나는 그 해체를 원한다.
마치 죽음을 원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잠을 그리워하듯.
나는 안다.
이건 건강한 의존이 아니다.
이건 파괴를 향한 걸음이다.
그럼에도 나는 멈출 수 없다.
왜냐면 파괴가 곧 완전함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은 나를 살리고, 동시에 죽인다.
그리고 나는 그 양쪽 모두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