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임무

by 신성규

세상을 버티려면 증오하거나 사랑해야 한다. 삶은 무겁고 불합리하며, 인간은 그 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상처받는다. 중립의 태도, 아무 일도 아닌 듯 흘려보내려는 자세는 생각보다 오래 가지 못한다. 무심함은 마치 얇은 얼음판과 같아서, 어느 순간 금이 가고 깨지면 우리는 피할 수 없이 감정의 심연으로 빠져든다. 그때 인간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증오로 기울어질 것인가, 아니면 사랑으로 기울어질 것인가.


증오는 이해하기 쉽다. 타인을 적으로 삼는 순간 세계는 단순해진다. 원인을 외부에 두고,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하며, 그 분노를 불태우는 방식으로 존재를 정당화한다. 증오는 날카롭고 즉각적인 힘을 준다. 하지만 그 힘은 결국 자신을 파괴한다. 증오에 사로잡힌 삶은 매일이 전투이고, 그 끝에는 고립만이 남는다. 증오는 견디는 방식 같아 보이지만, 실은 가장 빠른 자기 소모다.


사랑은 훨씬 어렵다. 사랑은 타인을 받아들이는 일이며, 그 안에는 필연적으로 상처가 포함된다.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열어 보이는 것이고,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상대를 이해하려는 고된 노력을 포함한다. 그래서 사랑은 느리고 불완전하다. 그러나 사랑은 증오와 달리 삶을 소모시키지 않고 확장시킨다. 사랑은 인간을 연결하고, 그 연결은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힘이 된다.


여기서 예술이 개입한다. 예술은 증오로 흘러가려는 마음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세운다. 절망과 분노, 상실과 슬픔을 예술은 그대로 방치하지 않는다. 예술은 그 감정들을 변환한다. 울분을 노래로, 고통을 그림으로, 절망을 이야기로 옮겨놓는다. 그리하여 인간은 증오를 직접적으로 폭발시키는 대신, 예술 속에서 그것을 환원하고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다.


예술은 증오를 무효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정직하게 바라보되, 그 힘을 사랑의 가능성 쪽으로 이끈다. 예술을 만나는 순간 우리는 단절된 타인을 이해하고, 내 고통이 전혀 고립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세상을 버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끝내 무너지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증오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사랑으로 기울어지게 하는 어떤 힘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그 힘을 끊임없이 되살린다. 예술이야말로 인간이 끝내 절망에 굴하지 않고, 서로를 향해 다시 나아가도록 하는 가장 은밀하고도 확실한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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