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맑을 때의 뇌는 물처럼 흐른다. 생각이 자유롭게 이어지고,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고 흘러간다. 그러나 우울이 나를 덮칠 때, 그 흐름은 놀랍도록 느려진다. 평소에는 자연스럽게 연결되던 사고의 고리들이 끊기고, 뇌가 무거운 돌덩이처럼 정지된 것만 같다. 단순한 일을 앞에 두고도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해야 한다”는 명령만 맴돌 뿐 몸과 마음은 따라주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틀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수많은 길이 있었던 사고의 세계는 하나의 좁고 어두운 복도로 줄어든다. 그 복도에는 부정적인 문장만 반복 재생된다. “소용없다.” “아무 의미 없다.” “변하지 않는다.” 사고는 제한되고, 감각은 둔해지며, 세계는 단순하고 차갑게 변한다. 마치 현실 전체가 나를 거부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이 느려진 뇌의 상태가 너무도 설득력 있다는 것이다. 우울 속에서 나는 오히려 ‘이게 진실이구나’ 하고 믿어버린다. 평소의 긍정과 가능성은 환상이었고, 지금 느껴지는 무력감이야말로 진짜 같다고 착각한다. 우울이 무서운 것은 바로 그 속임수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뇌가 느려지고, 사고가 틀에 갇히는 순간조차 ‘지금 나는 우울 속에 들어와 있구나’ 하고 자각할 수 있다면, 나는 아직 완전히 잠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마치 깜깜한 방 안에서 아주 작은 빛이 스며드는 균열을 발견하는 것처럼. 그 깨달음 하나가 어둠 전체를 이겨내진 못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는 신호다.
그렇기에 나는 다짐한다. 뇌가 느려질수록, 내 몸과 삶을 더 움직이자고. 글 한 줄 쓰기, 따뜻한 물로 손 씻기, 집 앞을 몇 분 걷기, 혹은 좋아하는 음악 한 곡 듣기. 이런 작은 움직임이 내 뇌의 경직된 회로를 흔들고, 굳어 있는 틀을 조금씩 열어젖힌다.
나는 완벽한 긍정을 믿지 않는다. 우울은 삶의 일부이고, 인간은 누구나 그 어둠에 휘말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둠을 전부로 착각하지 않는 일이다. 뇌의 속임수에 굴복하지 않고, 내 의지로 아주 작은 불빛 하나라도 켜는 일.
오늘도 나는 느려진 뇌 속에서 다짐한다. 나는 갇히지 않을 것이다. 더디더라도 움직이고, 작더라도 빛을 붙잡으며, 나를 다시 세계와 연결시킬 것이다. 우울이 내 뇌를 틀에 가두더라도, 나는 매번 그것을 뚫고 나오려는 작은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하고, 조금씩 다시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