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나는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느끼는 대신, 이해하려고 애썼다.
‘사랑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사랑한다며 상처를 줄까?’
‘무조건적인 사랑이 정말 존재할까?’
나는 사랑을 감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유와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다.
다른 아이들이 그냥 품에 안겨 자는 동안
나는 혼자 마음속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성인이 된 이후 여자들이 “사랑해”라고 말할 때
나는 속으로 ‘왜?’라고 물었다.
사랑은 내게 믿음이 아닌, 의심으로 시작되는 구조였다.
그리하여 나는 사랑을 학자처럼 대했다.
그 메커니즘을 뜯어보고,
그 언어를 해석하며,
그 조건을 검토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머릿속에서 분석하고 있었다.
사랑을 분석한다는 건,
어찌 보면 슬픈 일이다.
그건 사랑이 주어진 적 없는 사람의 생존 방식이다.
사랑을 의심해야 했고,
받아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오히려 거부하거나 시험하게 되었다.
‘정말일까?’
‘이건 사라지지 않을까?’
‘무언가를 바라지는 않을까?’
이런 나는 어쩌면
사랑을 배워야만 했던 아이였다.
감각이 아닌 개념으로,
안도감이 아닌 불안으로 시작한 사랑.
그래서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대하면,
나는 그 사람을 먼저 의심한다.
‘왜?’
‘얼마나 갈까?’
‘뭘 원하지?’
이 모든 생각은
사랑을 모른 채 자란 자의 방어 기제이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이성적 경계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살고 싶다.
사랑을 논문처럼 다루지 않고,
몸으로, 마음으로, 순간으로
느껴보고 싶다.
사랑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머무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아직도 사랑을 온전히 믿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천천히 배워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사랑을 분석하지 않고,
그저 느끼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이후 사랑의 노벨상을 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