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이라는 멸칭에 대하여

by 신성규

나는 가끔 묻는다.

“너도 똑똑한 편이야?”

“보통 사람들과 있을 때, 어떤 기분이 드니?”


이 물음은 자칫 우월감으로 읽히기 쉽지만, 실은 고립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타인과의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 대화의 박자가 어긋나는 낯설음,

나를 둘러싼 구조가 마치 다른 언어를 쓰는 듯한 이질감.

그 속에서 나는 되묻는다.

“나는 정말 그렇게 다르게 태어난 걸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이 질문을 꺼내는 순간 상대방의 얼굴에서 미묘한 긴장을 감지하곤 한다.

그 물음이 순수한 사유의 탐색이 아닌, 사람을 나누는 칼날처럼 느껴졌을까.

왜 우리는 ‘보통’이라는 단어에 그렇게 민감할까.

왜 ‘평균’이라는 말은 때로 멸칭처럼 들릴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한다.

“너는 특별해야 해.”

“보통이 되어서는 안 돼.”

평범은 곧 실패이고, 평균은 곧 존재의 희미함이라는 신념이

광고, 교육, SNS 속에 숨은 교리처럼 흐르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넌 그냥 보통인 것 같아”라고 말하면,

그것은 곧 “넌 주목받을 이유가 없어”라는 의미로 바뀐다.

숫자로 환원되고, 등급으로 나뉘는 사회 속에서

평균은 누구에게나 다가설 수 있지만, 누구도 머물고 싶지 않은 자리다.


나는 자주 생각한다.

평균은 수치로 보면 가장 많은 이들이 존재하는 자리인데,

정작 그곳에 살고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가 평균 이상이라 믿고 싶어 한다.

존재의 무게를 위해, 사랑받을 자격을 증명하기 위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평균적인 사람을 욕할 때 가장 잔혹해진다.

특출남이 되지 못한 이를 조롱하고,

비범하지 않은 생의 정직함을 우습게 여긴다.

그것이 무언의 폭력임을 알면서도, 그 비범의 열망에 스스로도 중독된다.


어쩌면 내가 던지는 “너는 똑똑한 편이니?”라는 질문은,

지적 계층화를 위한 검사가 아니라,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너 말고도 있을까?”라는

절실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누군가를 평균으로 규정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평균을 두려워하는 감정의 뿌리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 두려움은 곧 우리가 존엄을 조건화해온 방식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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