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나를 이해해주던 몇 안 되는 이 중 하나였다. 예술을 향유하고, 말에 색을 입히며, 침묵 속의 결을 알아차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언어를 읽을 줄 알았다. 흔히 말하는 ‘문화자본’ — 책, 음악, 미술, 사유 — 그런 것들에 우리는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의 집안은 달랐다. 가풍이 있고, 자산이 있고, 위신이 있었다. 나의 집안은 아니었다. 나는 스스로 문화를 세우는 사람이었지만, 그 문화는 현금 흐름과는 무관했다. 우리는 같은 감각에 머물 수 있었지만, 같은 제도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더 끔찍했다. 그녀의 가족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예술성과 지성을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건 자산의 문제였고, 안정의 문제였으며, 종종 “너를 위한 배려”라는 이름을 덧씌운 배제의 결정이었다.
가끔 그녀는 말했다.
“다른 나라로 도망칠까?”
그때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도망쳤어야 했던 걸까. 나는 제도의 울타리 밖으로 탈출하지 못했다. 사랑은 현실을 이기지 못했고, 현실은 자본에 굴복해 있었다.
결혼은 사랑의 제도가 아니라, 집안의 결합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그 말을 뼛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문화자본이란 아름답지만, 그것만으로 제도권 안의 일원이 되기는 어렵다.
우리 가족 역시 말했다.
“너는 거기서 행복할 수 없을 거야.”
그 말은 맞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말조차 슬픈 위선처럼 들렸다. 왜냐하면 그 말은 결국 나의 ‘자리 없음’을, 제도 속의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나의 위치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생각한다.
결혼이란 제도는 사랑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구조일지도 모른다고.